토론자료4_보수주의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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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는 어려운 개념이 아닙니다. 보수주의가 성경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임을 깨닫는다면 특별히 크리스찬들에게는 크게 어렵거나 복잡한 개념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이 없는 분들도 우리 사회가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본질적 가치, 즉 인간의 존엄과 책임있는 자유, 진리에 대한 확신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미 보수주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도 대립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역사상 의미 있는 진보와 발전은 본질적인 가치가 제대로 '보수'되었을 때 이루어져 왔습니다.
보수주의는 인간의 부족함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사상입니다. 보수주의는 인간이성을 맹신하고 폭주하여 광기로 치닫는 혁명의 참상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지켜야 할 본질적인 가치가 무엇인지에 관해 고민한 깊은 성찰입니다.
안타깝게도 보수주의를 오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보수주의를 그저 과거지향적이고 고리타분한 수구적인 성향 정도로 잘못 이해합니다.
아래 글은 그런 오해를 바로 잡기 위한 글입니다.
토론자료 : 보수주의의 가치를 실현하는 정치를 기대하며
- 트루스포럼 대표 김은구 / 2022년 2월호 월드뷰 기고문 원본
여야와 좌우를 떠나 진영논리가 진실을 앞서는 모습을 너무나도 자주 보게 됩니다. 정치라는 것이 정권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활동이라고만 본다면 그런 모습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치는 나라의 원칙과 가치를 세우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찬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거짓과 공작이 난무하는 정치권에서 원칙과 가치를 운운하는 것이 어쩌면 너무 어리석고 순진한 접근일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원칙과 가치가 무너지면 사회가 유지될 수 없습니다. 다가오는 차기 대선으로 나라 전체가 분주한 이 때에 새로 들어서게 될 정부가 보수주의의 원칙과 가치를 실현하는 정부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또 대한민국의 정치가 그 가치 위에 올곧게 서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보수주의’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보수주의가 성경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임을 깨닫는다면 특별히 크리스찬들에게는 크게 어렵거나 복잡한 개념이 아닙니다.
보수주의에 대한 오해
'보수'라는 말처럼 왜곡되고 곡해되는 단어도 많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보수를 과거에 집착하는 고리타분하고 수구적인 성향 정도로 이해합니다. 이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보수주의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사회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사회주의자는 아니듯이 보수적인 사람이 보수주의자는 아닙니다. 중국에서는 등소평이 개혁개방을 진행할 때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보수파라 불렀는데 그들이 보수주의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수적인 사람과 보수주의자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보수, 진보 구분을 탈피하고 좌우로 접근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극우라고 불리는 나치는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을 말합니다. 히틀러는 독일의 국가사회주의를 소련의 국제사회주의와 구별하기 위해 스스로를 진보 우파라 칭했습니다. 그리고 스탈린도 히틀러를 비난하면서 극우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소련의 국제사회주의, 독일의 국가사회주의는 모두가 사회주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좌와 극우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좌우는 편리한 구분이지만 상대적인 개념이기에 특정한 가치를 담아내기에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트루스포럼은 보수주의를 표방합니다.
어쩌면 스스로를 좌파 특히 진보라고 생각하시는 많은 분들이 사실은 보수주의를 지지하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상 의미 있는 진보는 보수주의의 기본적인 가치가 제대로 '보수'되었을 때 이루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수와 진보는 사실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함께 하는 개념입니다. 보수는 소중한 가치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보수의 반대는 진보가 아니라 파괴입니다. 진보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진보의 반대는 보수가 아니라 퇴보입니다. 창조적 파괴를 말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일반적으로 파괴는 퇴보를 동반합니다. 마찬가지로 보수와 진보도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라기 보다는 함께하는 개념입니다.
트루스포럼의 기독교 보수주의
트루스포럼이 표방하는 보수주의는 프랑스혁명에 대한 반성적 고찰에서 출발하고 다듬어진 사상입니다. 근본적인 뿌리는 인류 사회에 보편적 가치를 제시한 성경적 세계관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소용돌이치는 정치적 역사적 배경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천부인권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싸워 온 몸부림의 흔적입니다.
보수주의의 기독교적 뿌리를 애써 외면하시려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보수주의에 대한 이해를 매우 어렵게 합니다. 왜냐하면 프랑스혁명에 대한 반성적 고찰에서 출발한 보수주의 철학은 인간이성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이성을 신으로 만들어버린 혁명가들과는 달리, 인간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고 이성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영성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수주의의 기독교적 배경을 부정한다면 보수주의는 그저 점진적 개혁 정도로 치부되기 쉽고 보수주의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요원해지게 됩니다.
프랑스혁명과 보수주의
보수주의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는 자세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역사상 최초의 좌파인 프랑스 혁명가들은 인간이성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그에 기반한 유토피아를 추구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를 포함한 기존의 사회제도를 구체제, ‘앙시앙레짐’이라 칭하고 이를 파괴해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 했습니다. 교회를 파괴하고 이성의 신전을 세우고 하나님의 자리에 이성을 올려 두고 숭배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회적 실험은 군중의 광기와 살육으로 점철된 광란이었고 최고가격제를 비롯한 강제적 평등정책은 시장을 파괴하고 프랑스의 경제를 무너뜨렸습니다.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혁명의 참상을 돌아보면서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을 기록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상 최초로 보수주의 정치철학이 탄생한 배경입니다. 하지만 에드먼드 버크의 보수주의 정치철학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당시 유럽 문화권을 주도하던 기독교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정치 체제 안에서 천부인권의 구체적인 실현을 고민한 것입니다.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은 프랑스혁명을 지지한 프라이스 목사의 설교가 기독교적 사랑의 정신을 결여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보수주의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기독교 세계관에 바탕을 둔 보수주의자들과 프랑스혁명을 찬양하는 자유주의자들이 소위 '보수'라는 진영 안에 함께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주의자들은 프랑스혁명을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시작한 최초의 자유주의 혁명으로서 민주주의에 기여했다고 평가하며 찬양합니다. 하지만 보수주의는 프랑스혁명에 대한 반성적 고찰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프랑스혁명에 대한 이해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프랑스 혁명가들이 주창한 자유, 평등, 박애는 철저하게 혁명에 찬동하는 사람들만의 자유, 평등, 박애를 의미했습니다. 보편적인 인권을 보장한 것이 아닙니다. 혁명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참혹한 학살이 광범위하게 자행됐습니다. 예를 들어 로베스피에르가 집권한 1년 동안, 3만 5천명이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고, 방데지역에서는 60만명이 학살당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아이들은 말로 밟아 죽였고 임산부를 포도 압착기에 넣어 살해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프랑스혁명을 자랑스러운 민주주의의 역사로 찬양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나아가 프랑스혁명을 주도한 자코뱅은 마르크스주의의 모태가 되기도 했습니다.
보수주의자의 자유 vs. 자유주의자의 자유
트루스포럼을 시작했을 때 참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둔 보수주의자들과 무신론적 자유주의자들의 차이가 두드러졌습니다. 주로 술 문제와 혼전순결, 동성애 이슈에 관해 견해가 갈렸습니다.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는 인간의 자유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그 판단의 기준이 다릅니다. 기독교 보수주의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준을 두지만 하나님을 부정하는 무신론적 자유주의자는 인간의 이성과 그에 기반한 자유가 모든 판단과 행동의 기준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주의자의 자유와 자유주의자의 자유는 결이 다른 모양새를 보입니다.
자유주의에는 스펙트럼이 있다는 것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유주의는 종교개혁과 계몽주의에 영향을 받은 의미 있는 사상입니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기독교적 가치를 당연히 전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과 자유, 진실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공유했습니다. 19세기 영국의 고전적 자유주의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존웨슬리의 복음주의 운동이 영국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주의가 기독교적 토대를 잃어가면서 조금씩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무신론적 자유주의는 가치의 기준을 상실하고 상대주의라는 토대 위에 서게 됩니다. 국가에 대해 적극적 자유를 표방하는 현대 서구의 자유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가치상대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이에 더 나아가 포스트모더니즘은 마르크스주의를 방법론으로 차용하고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해체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돌아볼 때 현대 서구의 자유주의가 고전적 자유주의에서 상당히 변질된 것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대 서구의 자유주의가 마르크스주의를 닮아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무신론적 자유주의는 무신론적 인본주의, 세속적 휴머니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인간 자체를 궁극적인 가치로 보는 무신론적 인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성을 바탕으로 설정한 공동체의 이상에 미치지 못한 모든 개인들을 무시하고 평가절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경향은 모든 유형의 세속적 인본주의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드러납니다. 프랑스혁명가들은 인간이성에 기반한 인본주의적 자유를 표방했고 마르스크스주의자들은 휴머니스트임을 자처했습니다. 그렇게 휴머니즘을 숭배하면서도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역사가 공산주의로 귀결되는 것이 이성적인 결론이라 여겼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이 그에 맞게 변화하는 것이 역사라고 이해했습니다. 따라서 그에 미치지 못하는 인간들은 교화의 대상이 되었고, 도무지 교화가 되지 않는 사람들은 죽여도 된다는 생각이 이성적인 결론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휴머니즘을 말하면서도 인류의 진보를 위해 학살을 자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가 어떤 자유인지에 관한 문제로 귀결됩니다.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특정한 목적과 책임을 전제한 자유인지에 관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자유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자유의 본래적인 목적은 진리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선택하고 그분과 사랑의 관계를 누리는 자유입니다. 이는 최후의 심판을 전제한 책임 있는 자유이며 인간의 존엄과 진리·진실의 가치를 지켜야 하는 자유입니다.
보수주의의 특성
프랑스혁명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보수주의는 인간 이성에 기반한 유토피아 건설을 추구하기보다는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고 과거의 경험과 정책의 결과를 존중하며 신중한 자세를 취합니다. 과거의 경험을 존중하기 때문에 급격한 변화보다는 점진적 개혁을 지향합니다. 하지만 보수주의를 그저 점진적 개혁 정도로 치부하는 것도 커다란 오산입니다. 에드먼드 버크는 혁명적 방법으로만 제거될 수 있는 사회악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종교개혁을 지지했습니다. 보수주의자의 혁명은 인간의 존엄과 책임 있는 자유, 거짓을 떠난 진실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보수주의자들이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울 수 있는 것은 그 본질적인 가치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본질적 가치가 훼손됨이 명백할 때에는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보수주의자들의 혁명적인 면모를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보수할 것인가? - 보수주의의 본질적 가치
보수주의의 가장 본질적인 질문은 과연 무엇을 보수할 것인가, 무엇을 보전하고 지킬 것인가입니다. 프랑스혁명에 반대하고 왕정을 수호하거나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에 반대하는 것이 보수주의는 아닙니다. 보수파, 보수적인 사람과 보수주의자를 구별하는 기준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보수주의의 본질적 가치를 살피는 과정에서 보수주의가 태동한 서구문명의 근간인 성경적 세계관을 애써 외면한다면 이는 공허한 논의가 되고 맙니다. 기준은 항상 필요하기 마련입니다. 사실 보편적 가치라는 것도 이미 가치판단을 전제한 개념입니다. 상대주의의 늪에 빠지면 인간이 왜 존엄한지에 대해서도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보수주의의 본질적 가치는 성경에 기반한 인간관과 자유의 개념을 통해 도출됩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에 존엄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는 최후의 심판이라는 책임을 전제합니다. 그리고 이 자유의 본래적인 목적은 거짓을 떠나 진리이신 하나님을 선택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없이 지켜야 할 것은 바로 이 자유와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과 책임 있는 자유, 거짓을 떠난 진리. 이것이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가치이고 이것이 바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근본적인 기반입니다. 거짓에 기반한 민주주의와 시장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존엄하게 성장할 수 있는 사회는 자유민주주의와 건강한 시장경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기도 합니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이 본질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경제와 외교, 국방과 복지를 비롯한 모든 국가정책은 기본적으로 이 가치를 담아내야 합니다. 이 본질적 가치가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우리가 공산혁명을 비난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존엄을 무산계급이라는 관념적 집단에만 국한하기 때문이고, 중국의 개혁개방을 반대하며 공산주의의 가치를 지키려던 보수파를 보수주의자라 할 수 없는 것은 공산주의가 책임 있는 자유의 가치를 외면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자유롭고 건강한 시장을 지지하는 것은 그것이 근본적으로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경험적 진실 때문입니다. 사회주의적 포퓰리즘에 반대하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포퓰리즘은 국가의 건강한 발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평등으로 포장된 달콤한 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우리 사회의 가장 연약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경험적 진실에 기반한 교훈입니다.
보수주의와 종교
인간의 존엄과 책임 있는 자유, 거짓을 떠난 진리라는 보수주의의 근본 가치는 성경적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독교 신앙을 떠나서 인류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찬이 아닌 분들도 보편적인 가치를 수호하는 보수주의를 지지할 수 있습니다. 보수주의를 말하는 것이 결코 기독교 신앙을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을 강요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타인에 의해 강요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중세 카톨릭의 한계였고 종교개혁이 필요했던 이유입니다.
보수주의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과, 책임 있는 자유, 거짓을 떠난 진실의 가치를 신뢰합니다. 인간 이성에 바탕을 둔 유토피아를 설계하기보다는 인간의 부족함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영역이 있음을, 즉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합니다. 선대의 경험을 존중하고 시장과 정책의 결과를 바탕으로 신중한 태도를 견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수주의자는 사회의 발전을 추구하면서도 본질적인 가치를 수호해 나가려는 신중론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찬과 보수주의
보수주의는 무신론적 자유주의에 대항해서 형성된 개념이기 때문에 크리스찬들은 보수주의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를 좌파나 진보라고 이해하는 크리스찬들도 나름대로 인간의 존엄과 책임 있는 자유, 진리의 가치를 추구하기에 그런 인식을 갖게 된 경우가 많습니다. 크리스찬들 사이에서도 정치적 입장은 충분히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모두의 기준입니다. 이 진리만이 분열된 대한민국을 하나 되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기독교인 사이에서 정치적 견해가 갈리는 사안들은 사실인식에 차이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주의할 것은 거짓을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도 활동해 왔고 복음마저도 왜곡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이상 모든 상황을 완전히 안다고 오만할 수도 없습니다. 현실인식에 온도차가 존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실을 견지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본질적으로는 이것은 우리 안에 내재된 죄와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공작과 선동이 난무하는 정치현실을 돌아볼 때 낙심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좌우를 떠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크리스찬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정치가 진실 위에 바로 서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대한민국은 시작부터 혁명적 사회주의, 즉 공산주의라는 거짓과 싸워 이겨 세워진 나라입니다. 한강의 기적도 복지국가를 표방하는 사회민주주의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간파한 자조정신을 통해 이룩했습니다. 대한민국의 건국과 성장이 그러했듯이 거짓과의 싸움을 싸워 이기고 진리이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 우리 대한민국의 사명일 것입니다.
토론주제
오늘 본문에서 인상적인 내용을 자유롭게 나눠주세요.
보수주의 철학에 바탕을 둔 정치활동은 어떤 형태로 가능할까요?
교회의 정치참여는 어떤 형태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 할까요?
관련주제: 정교분리의 원칙
정교분리의 원칙은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그런데 정교분리의 원칙은 미국과 프랑스에서 사뭇 다른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미국의 독립선언서는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국가적 이상을 잘 드러냅니다. 미국에서 정교분리는 개인의 종교의 자유를 국가가 함부로 제한하는 것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이는 영국 국교회의 탄압을 피해 대서양을 건너온 청교도들에 의해 미국이 건립된 역사적 배경이 투영된 것입니다. 반면, 프랑스대혁명 당시 혁명가들은 무신론적 견지에서 엄격한 정교분리 원칙을 선언헸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정치에 대한 불간섭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카톨릭 교회가 왕정과 결부되어 있던 당시 상황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정치로 신앙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정치를 비롯한 인간의 모든 활동은 일정한 가치와 관점을 투영하기 마련입니다. 정치를 한 국가의 원칙과 가치를 세우는 과정으로 이해한다면 크리스찬의 정치 참여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권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방법에 관해서는 세심한 고려가 있어야 합니다. 신앙으로 정치를 강요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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