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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근현대사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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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in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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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오해와 진실.
2019. 2. 3. 08:40 독서 마당
아버지(신현확 부총리)가 이승만 대통령을 처음 대한 것은 1953년.정부가 서울로 환도한 직후였다. 경인지방 산업 시찰에 나선 이대통령을 공업국 공정과장으로서 수행하게 된 것이다.


첫 순시 지역인 인천으로 이동하기 위해 대통령과 함께 기차에 올랐다.  객차의 내부는 일국의 대통령이 타는 기차라기에는 너무 초라한 수준이었다.  일반 차량에 의자 몇 개를 치우고 소파를 갖다 놓았을 뿐이었다. 


 소파에 앉은 대통령은 창밖을 보면서 이따금 질문을 던졌다.

  “저건 뭐 하는 곳인가?”

  “네, 소주 공장입니다.”

  “저건 또 뭐 하는 곳인가?”

  “저것도 소주 공장입니다.”

아버지는 대통령이 양조장을 가리킬 때마다 대답하기가 영 곤혹스러웠다.  당시 산업 시설이라고 남아 있는 것은 3분의 2가 양조장 이었다.  전쟁이 끝난 남한의 현실은 그렇게 비참했다.


  “저것 좀 보게”

얼른 고개를 돌려 보니 철로변의 야트막한 산 중턱을 깎아서 도로를 낸곳이 보인다.  도로 위쪽이 일부 무너지고 소나무 몇 그루가 쓰러져 있었다. 

  “아이고! 철도국에선 저런 걸 왜 저렇게 방치하는 거야, 응?”

  “..........”

차마 입밖에 내지는 못했지만 가슴속에선 불만스러운 감정이었다.


  ‘ 이 양반이 지금 무슨 엉뚱한 소리? 전쟁으로 온 나라가 황폐해 지고 공장이 타서 무너지고 없어진 판에 소나무 몇개 쓰러진 게 무슨 대수라고…… . 아니 그리고 내가 공업국 공업과장이지 철도국 직원인가? 나보고 어쩌라는 말이야?’

 

 그러나 온종일 이승만 대통령 앞에서 그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아버지의 생각은 조금씩 달라졌다. 무너지고 불타버린 공장. 쓰러진 소나무, 망가지고 부서진 것들이 보일 때마다 안타까워 어쩔 줄 모르는 그의 모습에서 이나라, 이 국토에 대한 진한 애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아버지는 상공부 3개국 국장, 부흥부 차관, 부흥부 장관을 지내면서 대통령을 만날 기회는 점점 더 많아졌다.


가까이에서 대통령을 접하고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에 대한 세간의 비판이 얼마나 부당하고 과도한 것인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아버지 역시 이승만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과오가 없다고 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승만 대통령 에게 덧씌워진 오해와 편견은 지나친 바가 있다.


아마 우리 역사에서 이 대통령처럼 오해를 많이 사고 근거 없는 비난을  받은 인물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 대통령이 받은 엉뚱한 비판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대통령이 방귀를 뿡’뀌니까 옆에 있던 장관이 “각하,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아부를 했다는 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부당한 매도라고 아버지는 지적했다. 자기한테 아첨하는 사람들만 좋아한다는 건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내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이 대통령은 그런 아부에 쉽게 넘어가는 형편없는 지도자가 아니었다.


  진상은 이렇다.  자유당 말기 민주당의 유옥우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익흥 내무장관을 이렇게 비난했다.

  “아첨이나 해서 장관 자리에 앉은 이익흥 씨는 이승만 대통령이 방귀를 뀌면 옆에서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말할 사람이에요. 이익흥 장관을 비판하기 위해 들었던 예시적 표현이 어느 신문의 가십성 기사에 실리면서 마치 실제 있었던 일인 것처럼 전국에 퍼지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1963년경 어느 골프장 식당에서 유옥우 의원이 하는 이야기를 여러 사람과 함께 들은 적이 있다.


 “사실 반은 농담이고 반은 이 장관의 처신을 비꼬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였는데, 그게 그렇게 와전된 형태로 국민들에게 알려질 줄 누가 알았겠어.  이제는 내가 아무리 부정해도 그 말이 안통하게 되어버렸쟎아.  지금도 그때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참 안 좋아.”


(계    속)

 

 또 다른 오해는 이승만 대통령이 경제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는것이다.  세간에는 ‘경제는 병신,인사는 등신, 외교는 귀신’ 이라는 말까지 돌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말들은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20대에 한성감옥에서 복역하면서 <제국신문>에 기고한 논설을 보면 근대적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이해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이 대통령은 1920년대 하와이에 있을 때 한인기독학원을 운영하고 농장과 공장을 경영하는 등 생산 및 무역 활동에 장기간 종사했다.


  예컨데 충주비료공장을 건설할 때의 일을 보자. 당시 상공부 공업국장이었던 아버지는 미국과의 계약서 최종안을 가지고 결제를 받으러 갔다.  잠자코 아버지의 설명을 듣고 있던

이 대통령이 한마디 툭 던졌다. 


  “물가 변동에 따르는 에스컬레이션 클로즈(Escalation clause)가 들어가 있는 거요?”


아버지는 내심 깜짝 놀랐다. 에스컬레이션 클로즈란 물가나 외환시세의 변동에 따라 수출입계약,공사도급금액, 입금 등 변경될 수 있는 사항을 미리 정해두는 것이다.  당시는 이런 용어 자체를 아는 사람이 굉장히 드물던 때였다. 


  와전된 이야기 또 있다.


이 대통령은 ‘구두’가 뭔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그것이다.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는 대전피혁 문제를 보고하다가 그 진상을 알게 되었다.


  소 가죽을 가공해서 군화를 만드는 대전피혁은 1955년 ICA자금 22만 달러를 지원받아 건설한 공장이다.  여기서 생산된 제품은 모두 군납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미국이 2차대전 때 쓰다 남은 군화를 산더미처럼 원조하는 바람에 제품 판로가 완전히 막혀 버렸다.  대전피혁의 부실화 문제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대전피혁? 그게 월 만드는 공장인데?”

  “군대납품용 구두를 만드는 공장입니다.”

  “구두가 뭔데?”

  “발에 신는 구두 말입니다.”

  “그게 뭔데?”

  “양화 말입니다.”

  “아하, 양화?”  대통령은 와서 앉으라는 듯 손가락으로 옆에 있는 의자를 톡톡 두드렸다. 그는 싱굿이 웃으면서 말했다.


  “구두라는 말은 일본말이야”


  “아!”

아버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조선 말기까지 가죽신은 있었지만 구두라는 것은 없었다. 구두는 일본말’구츠靴’에서

온 단어이다.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는 아버지를 마치 손자 보듯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구두’라는 말을 모른 척했던 것은 구두가 일본말에서 온 단어임을 깨우쳐주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일본에 관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는 강경주의자였다.


한국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3년 1월 초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의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한 이 대통령은 한국에 호랑이가 있는지를 묻는 요시다 시게루 일본 총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한 마리만 남았소.”


자기자신을 일본에 맞설 호랑이에 비유한것이다. 그 정도로 반일감정이 깊었기에 ‘구두’라는 단어를 모른 척하며 우리 생활에 깊이 침투한 왜색을 경계했던 것이다.



출처: https://bobe2.tistory.com/2163?category=570801 [완행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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