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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 프리드먼, <노예의 길> 출판 50주년 서문 인터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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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olden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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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 교수님의 시작에 대해 여쭤보겠습니다. 어디에서 태어나셨습니까?

LAMB: Let me ask you about your own beginning. Where were you born?

프리드먼: 저는 브루클린에서 태어났지만, 13개월 정도가 되었을 때 이사를 한다는 충분한 지각이 있었습니다.

FRIEDMAN: I was born in Brooklyn, but I had sense enough to move out when I was 13 months old.

램: 부모님께서는 무엇을 하는 분이셨습니까?

LAMB: What did your parents do then?

프리드먼: 부무님은 뉴저지 주의 라웨이(Rahway)로 이사하셨는데, 두 분은 소득이 없었던 소규모 사업자였으며 오늘날 기준으로는 빈곤한 수준을 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작은 직물 공장을 소유했지만 별로 성과가 없었기 때문에 작은 소매점을 열었고 그것이 수입원이 되었습니다.

FRIEDMAN: My parents moved to Rahway, N.J., and they were small-scale businessmen who never had an income and by today's standard would have exceeded the poverty standard. They moved to Rahway, N.J., where they at first had a small textile factory, and then that wasn't very successful and so they opened a small retail store and that was the source of their income.

램: 대학에서 하기로 했던 일들에 대해 그들이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LAMB: What influence did they have on what you decided to do for college?

프리드먼: 거의 영향이 없었습니다. 저로 하여금 대학에 가도록 격려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요. 아버지는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나에게는 나 외에도 세 자매가 있었죠. 나는 막내였고 네 사람 중에서는 대학을 갔던 유일한 사람입니다.

FRIEDMAN: Very little, except for the fact that they encouraged me to want to go to college. As it happened, my father died before I had graduated from high school. I had three sisters and myself. I was the youngest, and I was the only one of the four who went to college.

램: 어느 대학에 가셨나요?

LAMB: Where did you go?

프리드먼: 러트거스 대학입니다.

FRIEDMAN: Rutgers University.

램: 주립대학이군요.

LAMB: A state school.

프리드먼: 아니요,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러트거스는 혁명 이전에 네덜란드 개혁 교회에 의해 설립된 아주 오래된 대학입니다. 그리고 제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전적으로 사립학교였습니다. 이후에 대형 주립대학으로 변경되었습니다.

FRIEDMAN: No, at that time it was not. Rutgers is a very old institution that was established before the Revolution by the Dutch Reform Church, and at the time I went to it, it was really entirely a private school. Only subsequently was it converted into one of the mega state universities.

램: 무엇을 공부하셨습니까?

LAMB: What did you study?

프리드먼: 잠시만요. 나는 주에서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대학을 갈 수 있었습니다. 당시 뉴저지 주는 경쟁의 결과에 따라 장학금을 제공했습니다. 일련의 시험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재정적 필요를 입증할 수 있는 사람들이 러트거스에서 무료로 수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러트거스에 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비극입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매우 가치있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말하는 비극은, 새로운 육신(역자 주: 사회주의 성향을 가진 정부 등을 의미하는 듯)을 가지게 된 뉴저지 주가 아직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평균 학업수준보다 낮다는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덜 자격이 있는(less qualified) 사람을 올려주는 프로그램입니다. 그것이 우리사회에서 일어났던 일의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우리는 능력있는 사람에게 열려있는 기회들을 강화하는 대신에 바닥에 있는 사람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두는 희생자(victim) 상태로 이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회적 진보(progress)는 밑바닥에서 나온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항상 사회 전체를 끌어올리는 상위 소수에게서 나옵니다.

FRIEDMAN: Hold on. However, I was able to go to it because of an action of the state. The state of New Jersey at that time offered scholarships on a competitive basis. Had a series of exams, and the people who succeeded in those exams and who could demonstrate financial need received free tuition at Rutgers. It was because of that that I was able to go to Rutgers. Now, the tragedy. At the time, that was a very valuable thing. The tragedy is that the state of New Jersey in their new incarnation now has a similar program, but the qualification for getting a scholarship is below average academic quality. It's a program to raise the lesser qualified. It typifies what's happened in our society. Instead of emphasizing strengthening the opportunities open to the able, we have tended increasingly to shift into a state of victims in which the emphasis is on raising the people at the bottom. Now, no social progress has ever come from the bottom up. It's always come from the top small number pulling up the society as a whole and raising it.

램: 언제 경제학에 처음 매료되었습니까?

LAMB: When did you first get into economics?

프리드먼: 저는 러트거스에서 경제와 수학을 연합전공으로 이수했습니다.

FRIEDMAN: I went to Rutgers and I did a joint major at the time in economics and mathematics.

램: 왜 그렇게 하셨는지 기억이 나십니까?

LAMB: Why did you pick it? Do you remember?

프리드먼: 아니요. 저는 수학을 좋아했고 잘했습니다. 그리고 소득을 가지기를 원했습니다. 순지한(innocent) 청년으로서 수학을 활용해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제가 알았던 유일한 방법은 보험회사의 계리 업무 였기 때문에 그것이 저의 초기 목표였습니다. 경제학에는 어떻게 빠져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경제학에 빠져들었습니다. 이제 1932 년에 졸업했을 때 상황은 매우 달랐습니다(역자 주: 1929년에 대공황이 발생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겪은 최악의 침체에 빠져있었습니다. 미국의 주요 문제는 경제적인 것이었고 저는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저에게는 행운이었습니다. 32 년에 졸업했을 때 브라운 대학교에서 응용 수학을 전공하거나, 시카고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 할 수 있도록 두 종류의 장학금을받을 수 있었는데, 당시 제가 경제학을 수강 한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FRIEDMAN: No. I liked mathematics and I was good at mathematics and I wanted to be able to earn an income. I may say, I worked my way through school, of course. I earned my own income. I wanted to be able to earn an income. As an innocent youth, the only way I knew that you could use mathematics to earn an income was in actuarial work for insurance companies, and so that was my initial objective. How I got into economics, I don't know, but somehow or other I did get into economics. Now, by the time I graduated in 1932, the situation was very different. We were in the midst of the worst depression we've ever had. The major problems of the country were economic, and it's natural that I would have been interested. As it happened, I was very lucky. When I graduated in 32, I was able to get the offer of two tuition scholarships, one from Brown University in applied mathematics and one from University of Chicago in economics, and it's easy to know why I took the economics at that time.

램: 지금까지 책을 몇 권이나 쓰셨을까요?

LAMB: How many books have you written?

프리드먼: 잘 기억이 안 나지만, 15권..?

FRIEDMAN: Oh, I don't know, 15.

램: 베스트셀러는요?

LAMB: The best seller?

프리드먼: 베스트 셀러는 의심의 여지없이 아내와 함께 집필했던 <선택할 자유>입니다. 그 책은 같은 제목이었던 TV 프로그램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PBS에서 1980년에 방영된 10개 파트의 TV 프로그램이었지요. 일반적인 경우와 반대로 TV 프로그램은 책을 기반으로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이 TV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한 것이 었는데, 왜냐하면 저는 TV 프로그램의 대본대로 말하지 않고 그냥 이야기 하겠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TV 프로그램의 대본으로 책을 썼습니다. 의심의 여지없는 베스트셀러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와 자유>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둘은 매우 흥미로운 대조물입니다. <자본주의와 자유>는 1963 년에 출판되었습니다. 출판 당시에는 그 당시의 지적 유행을 크게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런던의 이코노미스트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주요 신문이나 잡지에서도 (출판의)검토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뉴욕 타임스, 해럴드 트리뷴, 타임, 뉴스위크(역자 주: 예나 지금이나 ㅋ)에 의해서는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 중 누구도 그것을 검토하지 않았지만 출판된 후 30 년 동안 50 만 부 정도의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FRIEDMAN: The best seller is undoubtedly Free To Choose, which was written by myself and my wife. It was based on the TV program of the same title. It was a 10-part TV program that was shown in 1980 on PBS. In reverse of the usual procedure, the TV program wasn't based on the book; the book was based on the TV program, because I insisted that I was not going to talk to a written script for the TV program but I was just going to talk. Then from the transcript of the TV program, we developed the book. It's undoubtedly the best seller, although the other you have there, Capitalism and Freedom -- again, this is a very interesting contrast. That back was published in 1963. At the time it was published, it was so out of favor, so much outside the intellectual atmosphere of the time that it was not reviewed in any major paper or magazine, other than the Economist in London. It was not reviewed by the New York Times, by the then Herald Tribune, Time, Newsweek. None of them reviewed it, and yet over the subsequent 30 years, it has sold something like a half a million copies.

램: 넥타이에 그려져있는 인물이...

LAMB: The tie you have on . . .

프리드먼: 아담 스미스가 그려진 타이입니다.

FRIEDMAN: That's Adam Smith's tie.

램: 아담 스미스는 당신이 쓴 책 모두에서 언급되지요.

LAMB: Adam Smith comes up in all your books.

프리드먼: 물론입니다. 아담 스미스는 근대 경제학의 창시자입니다.

FRIEDMAN: Oh, of course. Adam Smith was the founder of modern economics.

램: 그는 언느 시대의 사람입니까?

LAMB: When did he live?

프리드먼: 18세기입니다. 아담스미스의 위대한 책인 국부론은 1776년에 출판되었는데, 그 해엔 (미국의)독립 선언도 있었습니다.

FRIEDMAN: In the 18th century. Adam Smith's great book The Wealth of Nations was published in 1776, the same year as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램: 처음으로 그걸 읽은 시점은 언제였나요?

LAMB: When did you first read it?

프리드먼: 학부생일 떄입니다.

FRIEDMAN: In college as an undergraduate.

램: 당신이 교육과정에 있어 그(아담 스미스)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나요?

LAMB: Is he the guy who's most important in your education?

프리드먼: 글쎄요, 말하기 어렵네요. 그는 우리 모두에게 큰 영향을 주었지요, 하지만 제가 보기엔 우리가 교육기간에 있는 동안 받는 영향은 책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책은 의심의 여지 없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들(책)은 큰 변화를 일으킵니다. 하지만 내가 교육을 받는 동안 가장 중요했던 사람-몇 사람이 있네요. 아서 번스(Arthur Burns), 얼마 후에 FRS(연방준비제도, 현 Fed)의 의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러트거스에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제 학부 과정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제 직업 활동에 있어서도 큰 멘토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시카고 대학으로 가고 나서부터는 다른 선생님들 그룹이 있었어요-제이콥 바이너(Jacob Viner), 프랭크 나이트(Frank Knight), 핸리 사이먼스(Henry Simons)-이 분들은 제가 관점이나 태도를 형성하는 데 있어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FRIEDMAN: Well, that's very hard to say. He certainly had a major influence on all of us, but after all, I think the influence when you get an education comes from people who are living people, not from books. Books influence you. There's no doubt about it. They make a great difference. But the person who is probably most important in my education -- there are several. One is Arthur Burns, who was subsequently chairman of the Federal Reserve System and so on. He was at Rutgers, and he taught me as an undergraduate and he was really my mentor for a large part of my professional career. I owe a great deal to Arthur. But then I went to the University of Chicago and there was a group of teachers at the University of Chicago -- Jacob Viner, Frank Knight, Henry Simons -- who played a major influence in shaping my views and attitudes.

램: 언제 <선택할 자유>나 <자본주의와 자유>를 집필할만큼 독립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LAMB: When did you think you had enough independent thought to start writing books like Free to Choose and Capitalism and Freedom?

프리드먼: 아주 늦은 시기였습니다. 그 전까지 저의 글은 과학적(scientific)이었습니다. 이 책들은 내 출판물에 대해 오해의 소지가있는 인상을줍니다. 제 출판물의 대부분은 기술, 과학, 경제 출판물로 대중의 관심에는 크게 관계가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저의 베스트 셀러는 <선택할 자유>이지만, 그것이 제가 쓴 가장 영향력있는 책은 아니며, <선택할 자유>의 대략 1/20, 즉 5% 정도 팔렸던, Anna Schwartz와 공저한 <미국 화폐의 역사>가 제가 쓴 가장 영향력 있는 책이라는 사실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는 공공 정책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에 상당히 많은 양의 경제에 대한 기술적인 분석 문헌을 출판한 이력이 있습니다.

FRIEDMAN: That was very late. Up until that point, prior to that, my writings were scientific. See, these books give a misleading impression of my publications. Most of my publications are technical, scientific, economic publications, which really do not have any great interest to the public at large. That's a best-seller, Free to Choose, but there's no question that the most influential book I've written is not Free to Choose, but a book that sold probably one-twentieth as many, 5 percent as many copies, namely A Monetary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which I wrote jointly with Anna Schwartz. So I really had a fairly large body of technical economic literature before I started writing on public policy.

램: 부인되시는 분은 언제 만나셨습니까?

LAMB: Where did you meet your wife?

프리드먼: 1932년 시카고 대학에서  처음 경제학 수업을 들을 때였습니다. 우리는 같은 수업을 들었어요. 제이콥 바이너의 <경제 이론> 수업이었고, 그는 학생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쉽게 할 목적으로 알파벳 순으로 자리를 배치했습니다. 그래서 제 아내였던 Rose Director는 Milton Friedman 옆에 앉았습니다. 게다가 로즈는 당시로서는 그 수업에서 유일한 여성이었습니다. 

FRIEDMAN: In the first course in economics at the University of Chicago in 1932. We took the same course. It was Jacob Viner's Economic Theory, and, as it happened, Jacob Viner seated his students alphabetically in order to be able to remember their names, and so Rose Director, which was her name, sat next to Milton Friedman. In addition, as Rose always says, she was the only girl in the class at the time.

램: 언제 책을 같이 쓰기로 하셨습니까? 책임을 어떻게 분배하셨지요?

LAMB: When did you decide to write books together, and how did you separate the responsibility?

프리드먼: 글쎄요, 대답하기가 어려운 질문입니다. 우리는 만난 지 6 년 만인 1938 년에 결혼했고 그 후 자녀를 낳았습니다. 로즈는 집을 정말 잘 돌보고 아이를 키우고 저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직업 경력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전에 몇 가지 글을 쓰고 연구 기관에서 일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서 대학에 가기 전까지는 그녀가 나와 함께 일하는 데 시간을 보낼  수 없었습니다. <자본주의와 자유>는 제가 일종의 여름 학기에서했던 일련의 강의를 기반으로했는데, 그녀는 그 수업을 듣고 책으로 편집했기 때문에 그녀도 공동 저자였습니다.

FRIEDMAN: Well, that's very hard to answer. We were married in 1938, six years after we first met, and then we had children. Rose did a wonderful job in really taking care of the house, raising children and being an inspiration to me. But she had a professional career before that. She had written some things and worked in research organizations before that. But it wasn't until the kids were grown up and off to college that she was able, really, to spend the time working with me. Capitalism and Freedom was based on a series of lectures that I had given at a kind of summer school, and she took those lectures and reworked them into the book, so really she should have been a joint author on that as well.

램: 자넷과 데이비드는 누구인가요?

LAMB: Janet and David?

프리드먼: 제 자녀들이지요.

FRIEDMAN: They're my children.

램: 그들에게 <자본주의와 자유>를 헌정하셨습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LAMB: You dedicate Capitalism and Freedom to them. Where are they?

프리드먼: 자넷은 캘리포니아에 있습니다. 그녀는 변호사이지만, 그녀의 남편은 UC Davis에서 강의하는 컴퓨터 교수입니다. 제 아들인 데이비드는-물리학 학위를 취득했다는 점에서 변화무쌍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제 경제학자입니다. (저와의)저녁식사를 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경제학 수업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ㅎㅎ

FRIEDMAN: Janet's at Davis, Calif. She's a lawyer, but her husband is a computer specialist who teaches at the Davis Branch of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My son David is now -- well, he's had a checkered career in the sense that he got a degree in physics, a Ph.D. in physics, but he's become an economist. He never took a course in economics except over the dinner table.

램: 그는 어디에 있나요?

LAMB: Where is he?

프리드먼: 그는 시카고 로스쿨에서 법과 경제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FRIEDMAN: He's at the University of Chicago in the law school where he does research in law and economics.

램: 노벨 상은 언제 받으셨고, 무엇으로 받으셨습니까?

LAMB: When did you win the Nobel Prize and for what?

프리드먼: 저는 1976년에 노벨상을 받았는데, 재미있는 점은 앞서 언급드렸던 베스트 셀러 두 권으로 수상하지는 않았고, <미국 화폐의 역사>와 <소비함수 이론>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소비함수 이론>은 저의 초기 저서였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제가 쓴 과학적인 저술 중에는 제일인 것 같습니다. <미국 화폐의 역사>는 의심할 바 없이 가장 영향력 있는 저술이었고, <선택할 자유>는 가장 잘 팔렸으므로 둘은 유사한 범주에 있지는 않습니다.

FRIEDMAN: I won the Nobel Prize in 1976, and I won it for none of those things, but for Monetary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and an earlier book of mine called A Theory of the Consumption Function, which, I may say, are funny things. A Theory of the Consumption Function is, in my mind, the best thing I ever did as a piece of science. Monetary History is undoubtedly the most influential, and Free to Choose is the best selling, so they are not similarly characterized.

램: 조금 더 상세한 질문을 드려도 괜찮을까요? 연필 이야기에 대한 얘기를 하고싶은데요.

LAMB: I'm going to take it even a step lower, if you will. I want you to tell a little bit of the pencil story.

프리드먼: 물론입니다. 기꺼이.

FRIEDMAN: Oh, sure. I'd be delighted to.

램: 이 책의 표지엔 연필을 쥐고 계신 모습이신데요.

LAMB: Your picture on this book has you with a pencil in your hand.

img.png

<선택할 자유>의 표지. 지금도 팔리고 있다.

프리드먼: 그것은 제가 처음 언급한 것이 아닙니다. 경제 교육 재단(Foundation for Econommic Education)의 책임자 인 Leonard Read에게서 따왔습니다. 이 예시는 시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려주기 위해, 같은 종교를 믿지 않는 서로를 모르는 사람들이 협력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데 활용됩니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Leonard Read와 저는 납 연필-이른바 노란색 연필 중 하나-을 들고 말했습니다. "연필 만드는 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연필을 만들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목재를 구해야합니다. 목재를 얻으려면 벌목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톱이 필요합니다. 이 모든 것을하는 방법을 전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납 연필의 내부는 사실은 납이 아닙니다. 흑연입니다. 흑연은 라틴 아메리카의 광산에서 나옵니다. 연필을 만들려면 납을 구할 수 있어야합 니다. 연필 끝의 고무는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은 천연 고무도 아니지만, 제가 얘기 할 때는 천연 고무였습니다. 고무 나무의 원산지는 말레이시아가 아니지만 영국 식물 학자들에 의해 말레이시아로 수입되었습니다. 그래서 연필을 만드는 방법을 알기 위해서는이 모든 것을 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연필을 만들기 위해 함께 협력 한 사람들은 아마 수천 명일 것입니다. 어쨌든, 흑연을 파낸 남미 사람들은 고무 나무를 두드리는 말레이시아 사람들과 협력했고, 나무를 베는 (아마도)오레건 사람들과 협력했을 것입니다. 이 수천 명의 사람들은 서로를 모릅니다. 그들은 다른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들은 다른 종교권에 속해 있습니다. 서로를 본다면 미워할 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함께 협력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은 시장의 존재입니다.

대답은 비용을 기꺼이 지불 할 의향이 있는 누군가 때문에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이 흑연을 발굴하도록 유도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누가 그들에게 지불하는지 알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흑연이 무엇을 위해 사용될 것인지 알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은 누군가가 그들에게 돈을 지불한다는 것뿐이었습니다.

하이에크로 돌아가면, 실제로 그가 쓴 가장 중요한 기사 중 하나는-그는 책에서는 이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정보전달 메커니즘으로서의 가격, 정보를 전달에 있어서의 가격의 역할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흑연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더 많은 흑연을 원하는 사람들이 더 높은 가격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흑연의 가격은 오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은 왜 수요가 증가하는 지를 알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의 누가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싶어하나요? 가격 자체가 흑연이 이전보다 희소하고 수요가 많다는 정보를 전달합니다.

연필로 돌아가 보면,이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모은 것은 엄청나게 복잡한 가격 구조였습니다.-흑연 가격, 목재 가격, 고무 가격,이 일을 한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임금 등-개인이 계획하지 않은 복잡한 협력 및 조정 구조를 얻을 수있는 방법에 대한 놀라운 예입니다. 중앙정부의 사무실에 앉아 말레이시아로 "고무 골무를 하나 더 생산하라"거나 신호를 보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 일들에 관련된 누구도 모든 사람들을 알 필요가 없도록 모든 것을 조정한 것은 시장입니다.

FRIEDMAN: That didn't originate with me. I got it from Leonard Read, who was the head of the Foundation for Economic Education. It's used to tell how the market works, and it's used to tell how people can work together without knowing one another, without being of the same religion or anything.

The story starts like this: Leonard Read and I held up a lead pencil -- so-called, one of these yellow pencils -- and we said, "Nobody knows how to make a pencil. There's not a single person in the world who knows how to make a pencil." In order to make a pencil, you have to get wood for the outside. In order to get wood, you have to have logging; you have to have somebody who can manufacture saws. No single person knows how to do all that. What's called lead inside isn't lead. It's graphite. It comes from some mines in Latin America. In order to be able to make a pencil, you'd have to be able to get the lead. The rubber at the tip isn't really. Nowadays it isn't even natural rubber, but at the time I was talking, it was natural rubber. It comes from Malaysia, although the rubber tree is not native to Malaysia but was imported into Malaysia by some English botanists. So in order to know how to make a pencil, you would have to be able to do all of these things.

There are probably thousands of people who have cooperated together to make that pencil. Somehow or other, the people in South America who dug out the graphite cooperated with the people in Malaysia who tapped the rubber trees, cooperated with maybe the people in Oregon who cut down the trees. These thousands of people don't know one another. They speak different languages. They come from different religions. They might hate one another if they saw them. What is it that enabled them to cooperate together? The answer is the existence of a market.

The answer is the people in Latin America were led to dig out the graphite because somebody was willing to pay them. They didn't have to know who was paying them; they didn't have to know what it was going to be used for. All they had to know was somebody was going to pay them.

Indeed, going back to Hayek, one of the most important articles he ever wrote -- it doesn't show up in the book -- was about the way in which prices are an information mechanism, the role of prices in transmitting information. Let's suppose there's a great increase in the demand for graphite. How do people find out about that? Because the people who want more graphite offer a higher price for it. The price of graphite tends to go up. The people in Latin America don't have to know anything about why the demand went up. Who is it who's willing to pay the higher price? The price itself transmits the information that graphite is scarcer than it was and more in demand.

If you go back to the pencil thing, what brought all these people together was an enormous complex structure of prices -- the price of graphite, the price of lumber, the price of rubber, the wages paid to the laborer who did this and so on. It's a marvelous example of how you can get a complex structure of cooperation and coordination which no individual planned. There was nobody who sat in a central office and sent an order out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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