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 5대인식
커뮤니티 > 5대인식
분류 탄핵사태

민주주의의 적이 되어버린 소위 민주화세력

페이지 정보

작성자 boaz
작성일

본문

[칼럼] 민주화 세력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적


“민주유공자 호소인들을 역사의 준엄한 심판대에 세울 때”


[편집자주] 19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이면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운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의사 전북 남원 지산의원 홍성주 원장이 대전에서 펼치는 시민 각성 운동을 위해 연설문으로 준비한 원고를 싣습니다. 

미국 의회 내 인권기구가 한국의 대북전단금지법 제정을 문제삼아 지난 4월 15일, ‘한국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특별청문회’를 개최했습니다. 이 청문회의 증인으로 나선 고든 창 변호사가 한 말입니다.

 

“한국 민주주의는 자국 대통령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자신을 ‘민주화 세력’으로 포장해 온 문재인 운동권에 대한 국제 사회의 객관적 평가입니다. 자칭 ‘민주화 세력’이 실은 한국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4.7지방선거 직전 ‘민주유공자법’을 발의했다가 선거 표심이 악화하자 황급히 철회했습니다. 2월 26일에는 4.3특별법을 개정해 남로당 공산주의자들을 대한민국이 보상해주는 ‘민주통일유공자’로 둔갑시켰습니다. 그리고 4월 3일에는 문재인이 제주로 내려가 바로 이들을 “먼저 꿈을 꾼 자”로 칭송하며 추모했습니다. 문재인 운동권 세력이 민주화가 아니라 대한민국 공산화의 주역이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87년 ‘민주화 대타협’은 운동권 꼰대 공적 아냐 >


대한민국 민주화는 1987년 6월 ‘민주화 대타협’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호헌세력과 ‘직선제 개헌’을 요구한 6월 시위 군중 사이에 타협의 산물입니다. 군부 강제 진압과 민중봉기의 피흘림이 아니라, ‘선거’를 통한 평화적인 ‘민주화 이행 절차’를 마련했습니다. 새로운 헌법에 따라 그해 12월 대통령 선거를 치렀고 현재의 제6공화국 ‘87헌정체제’가 성립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34년 전, ‘산업화 개발 독재’로 불리던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권위주의 시대가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영미법 전통의 적법 절차까지 도입한 대한민국의 진정한 자유민주 헌정체제가 출범한 것입니다. 이러한 평화적이고 타협적인 이행과정은,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에서는 그 예를 찾기 힘든, 우리 나라만의 민주화 성공 사례였습니다.

 

이러한 민주화를 이뤄낸 주역은 당시 ‘민족민주 운동권’이 아니었습니다. 운동권은 ‘민주화 대타협’을 극렬하게 반대했습니다. 운동권 세력도 당시 ‘직선제 쟁취’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북한 통일전선부의 대남 혁명전략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대중을 전취해’ 대한민국을 전복시킬 ‘전민항쟁’으로 나아가기 위한 ‘낮은 단계 통일 전선’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원해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직선쟁취’ 구호는 ‘넥타이 부대’라 불린 하이칼라 직장인의 동참을 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서울과 부산 등 전국 주요 도시가 운동권이 이끄는 시위군중으로 장악되었습니다. 이제 군부가 폭력진압으로 나오면 이에 대항해 제2의 광주사태와 같은 민중봉기로 대한민국을 뒤엎겠다는 것이 운동권이 예상한 시나리오였습니다.

다시 말해, 운동권은 전두환 군부가 직선제 요구를 받아들이고 6.29 대국민 항복선언으로 나올 것을 예상치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극렬하게 반대했으며, 12월의 대통령 선거 유세를 보도블럭과 화염병으로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87년 자유민주 헌정체제로의 평화적이고 타협적인 이행을 이렇게 폭력적으로 방해했던 세력이 지금 ‘민주화 유공자’를 자칭하고 있는 문재인 운동권의 실체입니다. 어떻게 이들을 민주화의 주역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민주화가 아니라 공산화의 주역>


87년 민주화를 계기로 확대된 자유의 공간 속에서 전대협 전교조 언노련 민노총 민변을 출범시키며 ‘민중민주주의 계급혁명’ 노선을 본격화했습니다. 4.19학생 의거 이후 좌익운동이 대두되었던 것처럼, 이들은 87년 6월 민주화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민중민주화의 주역’이었습니다.

 

민중민주화는 공산사회주의와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계급혁명 운동입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에는 북한 김일성주의에 더욱 경도되는 한편, ‘시대적 미아’로 전락해 더 이상 이념에 대한 고민도, 미래사회에 대한 비젼도 없이 오직 자신들의 ‘떼 권력’을 추구하는 집단이기주의 운동권 권력으로 성장해 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30년 만에, 한국사회 전 분야에 걸쳐 구축한 자신들만의 ‘떼 권력’을 총 동원해 대한민국을 사기 탄핵하고 촛불혁명정부를 수립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자유선거 제도를 이용한 ‘유사(類似) 계급혁명’에 성공한 것입니다.

 

이제 운동권 ‘민주팔이’들을 더이상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자칭 민주화 세력은, 고든 창 말처럼 한국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민주의 적입니다. 북한식 인민민주주의, 즉 전체주의 세력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모든 재앙의 근원입니다. 대한민국의 암 덩어리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증오하는 ‘실체도 없는 친일파’보다 백배천배 더 악랄한 매국노들입니다. 이제 이 민주유공자 “호소인”들을 역사의 준엄한 심판대에 세울 때가 되었습니다!

 

자유민주화의 주역은 당시 정의감에 불타던 일반 대학생들과 ‘넥타이부대’ 하이칼라 직장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산층의 권리의식과 생활양식을 역사무대에 등장시킨 박정희 대통령과 산업화 세력이었습니다. 70년대 유신정권이 추진한 중화학공업화의 성공과 그 결실이 없었다면, 87년 6월의 ‘민주화 대타협’은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5.16정변을 일으킨 박정희와 군인 관료들이 ‘조국 근대화’에 실패하고, 지금 운동권 꼰대들이 그런 것처럼, 오직 자신의 권력 유지에 집착하며 부패하고 타락했다면 87년 6월은 매우 불행했을 것입니다. 시가전을 주도한 운동권이 기대했던 대로, 계엄령 강경 진압과 제2의 광주사태가 전국 규모로 일어났을 것입니다. 대한민국도 군사정변과 민중봉기가 교대로 반복되는 제3세계 나라들처럼 전락했을 것입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자국 대통령의 공격을 받고 있다”>


그러나 박정희라는 특출한 리더 덕분에 5.16군사정변은 혁명공약으로 내건 목표를 빠짐없이 초과 달성했고, 새마을 운동으로 5천 년 가난의 농촌 지역까지 천지개벽을 이루어 냈습니다. “세계를 발로 뛰는” 한국인의 출현과 함께, 한국인의 생활양식을 혁명적으로 개조한 진정한 ‘5.16혁명’이었던 것입니다.


5.16혁명 2세대인 전두환 군부와 집권 세력에게는 바로 이러한 성공에 대한 자부심과 애국주의 국가관이 있었습니다. 중화학공업화의 결실로 최고 성장률을 내내 기록했습니다. 정치적 자유 확대를 요구하는 민심의 거센 요구를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전두환 퇴진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가득 메운 대학생과 넥타이 부대는 바로 자신들이 “무에서 유를 창조한” 대한민국의 미래 동량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 두 세력 간의 성숙한 타협으로 87년 6월 ‘민주화 대타협’이 성사되고, 이로부터 87년 자유민주 헌법체제가 성립하여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87체제를 부정하고, ‘낮은 단계 연방제’ 개헌을 한다며 종북질하는 민족반역자들이 어떻게 민주화 주역이라고 ‘유공자 특권’을 요구한단 말입니까? 어떻게 “한국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자국 대통령”을 ‘민주인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운동권이 민주화의 주역이 아니라는 사실은, ‘촛불혁명정부’ 자체가 빼박 증거입니다. 촛불 정부의 지난 4년이 낱낱이 입증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거짓과 독재”였습니다. 반민족적인 종북질과 비굴한 대중국 사대주의, 그리고 국민을 편 갈라 통치하는 전체주의적 전횡과 독재로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이제 바로 이 전체주의 운동권 ‘떼 권력’을 해체하기 위해 ‘제2의 민주화 투쟁’이 시작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북한해방과 자유통일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 ‘87년 민주화의 주역’들이 ‘역전의 용사’가 되어 지난 4년 동안 고단한 ‘태극기 투쟁’을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왔습니다.

 

이제 내로남불 위선과 부패에 찌든 ‘운동권 꼰대’ 권력의 유사(類似) 전체주의 독재에 저항하는 ‘제2의 자유민주화 투쟁’이 2030 청년 한국인들에 의해 전개될 것입니다.


/홍성주 남원 지산의원 원장


The New Paradigm 2021년 9월호
제작 : (사)법치와자유민주주의연대(NPK)

구독문의 : 010 4040 1799(문자)

 

관련자료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7건 / 1페이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