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대구폭동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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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차에서 이어 대구폭동사건의 배경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남로당 총책 박헌영의 좌익세력들은 해방 다음해 1946년 9월10일 서울 을지로에서 화물자동차 파업을 모의하고 일으킨 것이 부산으로 확대된 다음 대구폭동 사건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 연장 선상에서 좌익들의 선동이 이어져 9월에 전국으로 노동파업확산이 펴져 나가. 각지역 좌파 쁘락치를 결성 공산주의 활동이 더욱 거쎄게 퍼져나갔다.
파업 궐기에 힘입은 전국노동조합중 철도 노동조합이 동참하여 4만여명의 철도노동자가 일차적으로 기차 화물 부터 파업을 시작하였다. 당시는 일반화물보다 기차화물 비중이 높았는데 기차화물 운행을 막아 국가 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다.46년 9월14일 서울을 중심으로 철도노동자 3.600명이 참여한 노동자 파업이 확산되어 가는 과정에서 9월23일 상오1시를 기해 부산에서 부터 파업과 폭력을 동반한 시위는 거쎄게 발동되었으며 부산에서 대구로 번져지면서.전국 에 은신한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전평 경상북도 산하로 결집하고 그때를 기해 남한 전역에 파업과 폭동 두 방향으로 조직화 하였다.
조선공산당 대구시당 위원장이 조선노동자 총파업 투쟁위원회를 결성하여 남한사회를 뒤 엎기위한 논의에 착수했다.그들은 미군 주둔을 철퇴시키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동시에 민심선동에 나섰다.파업을 주동한 조선공산당 각 지역 분야 노조는 농민조합.인민위원회.부녀동맹.민주청년동맹(민청) 등 공산주의 극렬 좌익분자들이 주동이 된 것이 첯째의 배경 이었다. .(참고.대비정규전사1945.1960년.20쪽)
대구폭동 최초 주동자는 대구의전 3학년 최무학. 학생 자치회 회장이었다.1946년 5월 대구시에 첯 콜레라 환자가 발생했으며 전염 속도가 빨라 전국에서 콜레라 전염발병율이 대구가 제일 높았다.폭동주동자 최무학은 해부학교실에서 조수로 일하면서 시체방부제등 일을 하였으며 조수실 옆에서 숙식하면서 생활했다. .해부학실에서 남로당 군사 책임자 이재봉과 교분을 맺어으며 이재복의처 공길자와 함께 공산주의 활동이 발각되어 구속되는 과정에서 공산주의 사상 선동과 조직 확산 그리고 이들로부터 접선 세력을 밝혀내게 되었다. 남한에 기생하는 공산당 고정간첩을 찿아 내는데 단서가 잡혀 폭도소탕 작전에 큰도움이 되었다.
9월23일 부산철도파업.24일 철도종업원파업.25일 전기전차 운행중지및 물류 이동 파업과 우익인사와 경찰가족 부녀자들을 찿아내어 잔인하게.학살을 저질렀다.그들의 폭력적인 파업이 대구10.1.폭동사건의 첮 시발점이 되었다. 이들의 선동으로 시민들이 불만을 가질수있는 괴책과 폭력의 방향을 정하고 폭동을 성공하기 위해 경찰과 우익인사에 촛점을 맛쳐 그들의 가족에게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다. 부산에서 대구시 중심으로 거점이 이동되어 좌파 세력은 대구에서 경상북도 주변으로 확산되어 대구뿐아니라 대구 외각지역까지 무법천지로 만들었다.
남한의 폭동사건에 대하여 북로당 김일성은 부산에서 대구로 번져진 노동자 폭동에 대하여 그는 영웅적 궐기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성원을 바라는 격려전문을 보냈다.김일성격려문 내용은 당원 동지 여러분과 영웅적 궐기에 참여한 인민노동자는 강한 정신력과 투쟁을 바라며 동지들의 투쟁에 물리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것이라고 했다.그가 말하는 영웅적 궐기 목적은 소련군정과 결합하여 힘을 합쳐나가면서 한반도 전체를 소비에트화하면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건설의 초석이 될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힘입어 북조선 직업동맹 결성과 남조선 노동자동맹이 남조선 폭동 지원 결의서! 를 채택했다.. 북조선 직업동맹 기술자.사무원.문화인 대회를 개최하고 돌격적으로 각분야 농산물 증산사업을 실시 하기위해 노동시간을 연장하여 증산에서 얻어지는 소득을 갹출하여 남조선 영웅적 폭동에 가담한 인민에게 위문금으로 보낼것을 결의했다.
북조선 학자들은 남조선 9월파업과 10월 대구폭동이 공산당 지령에 의해서 행동하는 폭동이 아니라 남조선 인민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46.10월 항쟁으로 결정했다.
65차에서 밝혀진봐와 같이 소련군정은 남한을 공산산화통일로 접수하기 위하여 대구폭동에 필요한 자금지원을 다음과 같이 하였다. 1946년 9월 부산철도파업에 이은 대구파업지원비.200만원.10월1일 대구폭동사건지원비 300만원과 39만원 두 차례지원 그리고 122만루불을 지원했다. 남조선 폭동을 위한 투쟁 자금으로 소련 군정이 지원했다는 사실이 소군정 스티코프 비망록에서 밝혀졌다.또한 소련 군정은 한반도를 소련 위성국가로 흡수하기 위하여 김일성을 앞장세워 대구10.1폭동을 지령하여 저질러진 사건으로 판명되었다.
미국이 승전국으로서 한반도를 해방시키고 장기간 전쟁 피로로 일본 오키나와에서 휴식시간을 가지는 동안 소련은 그순간을 이용하여 재빨리 한반도 38선까지 남으로 무단 침공하였다.미국에 의해 남한 침공이 저지된 선이 바로 지금의 38선 이다.위와같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 분명한데도 좌파들은 역사를 거짓 왜곡하고 있다.그이유는 소련 관리하의 한반도 적화통일의 기회를 미국 때문에 수포로 돌아 감으로서 한반도 적화 통일이 무산 되었다는 원통함이며 그 분풀이로 분단의 책임이 이승만과 미국에게 있다고 억지 주장을하고 있다. 즉 이승만 건국대통령을 비판하는 우리나라 내의 좌파 세력들은 자유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존재가치를 왜곡하는데 73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공산주의뿌리가 확산존재하고 있다..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 건국과 자본주의도입.시장경제를 뿌리내려 국가위상과 시장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건국 이었으며.이땅에 공산주의는 ,절대 안돼.그는 철처한 반공주의자였기 때문이다.건국후 기적적으로 발전시킨 박정희전대통령의 근대화 산업화 업적마져 사상과 정치이념에 의해 턱도없이 덮히고 중상모략과 깍아내리는 현실.사실을 덮고 삭제하는 것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우리는 지금 이시대에 참으로 불행한 현실과 혼돈에 빠져 있다.자녀를 키우는 부모님들이 바른 한국사 공부와 자녀를 내가 지켜야 한다는 관심이 요구된다.이어 67차가 연재됩니다..
ㆍ2020.10.21.김상덕블로그.sdkim1944.the country comes first.(김상덕국제경제)
https://m.blog.naver.com/sdl1944/222121674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