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와 시설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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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서울대에서 시설관리 일을 오래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건물을 크고 높고 많이 짓는다고 다 좋은 건 아니라는 것이죠.
기둥과 천장이 없으면 건물이 아니듯이
기본적인 배수로 같은 것들이 있어야 건물의 제 기능을 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동양화에서는 '여백의 미(美)'라는 것이 있죠.
10여 년 넘게 캠퍼스의 빈 공간들 즉 잔디나 나무들이 우거진 공터 등을 보면서
마음도 여유롭게 지내 왔는데 언제부터인지
캠퍼스에 빈 공간만 보이면 건물을 많이 지어서 숨도 쉬기 힘들게 갑갑합니다.
지금도 학교 내 셔틀버스를 타고 한 바퀴를 돌면 여기저기에서 건물을 새로 짓고 있는 곳이 많죠.
건물을 짓는다고 뭐라고 하는 건 아닙니다.
업무 시간에 순찰을 다녀 보면 빈 강의실이 많은데 그걸 잘 관리하면 되는데
수리해서 고치고 사용하기보다는 우리는 새로 갈아엎어버리고 다시 짓는 것
다시 말해 RESET 해버리는 습관이 들어버렸습니다.
컴퓨터 게임은 하다가 막히면 리셋할 수 있지만 인생은 그럴 수 없죠.
자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 좁은 나라에 그 많은 산업 폐기물들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하나님이 지으신 놀라운 창조 세계를 정복의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관리의 사명을 잃어버리니까 자연이 파괴되는 것이죠.
요즘의 기상이변도 지구 온난화도 결국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놔두는 게 제일이죠.
행정관 본부 앞에 지하주차장을 만들고 있는데 지상에는 녹지로 꾸미고 있어요.
건물 위에 멋있게 만들어 놓으면 보기 좋겠지만 문제는 비가 많이 오면 매번 물이 샌다는 것입니다.
적당한 비면 좋겠지만 이번 폭우처럼 오면 아무리 방수를 잘해도 감당이 안 됩니다.
이번 폭우로 인해 느끼는 것이지만 대자연의 진노 앞에 인간이 쌓은 바벨탑은 무용지물이 됩니다.
노천강당(버들골풍산마당)을 멋있게 지어 놓았지만 정작 배수로는 엉망이고
그로 인해 폭우 후의 배수는 전기 설비들이 모여 있는 60동 행정관 지하 수변전실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VCB, 변압기, ACB, 통신장비, 계전기 등 전기 시설물의 피해는 막심합니다.
우리 시설관리반 사람들은 아직도 수해 복구 중입니다.
사람들이 점점 편해지려면 기기들이 점점 자동화되고
사람을 줄이면서 시설은 점차 최첨단화 되지만 자동화의 그늘은 항상 존재합니다.
큰 자연재해 앞에서 고가의 장비들은 고철 덩어리가 되고
수해 복구에 동원되어야 할 인력들은 이미 인원감축되어서 일손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학교가 다시 정상화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