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국정원장들의 대법원 최후진술 -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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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국정원장의 최후 진술
"성대(聲帶)에 이상이 생겨 말하지 않겠습니다” "뇌물을 주려면 몰래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 줬을 것 같은데…"
"대법원의 판결은 법치가 아닙니다"
엄상익(변호사)
늦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스산한 날씨의 2020년 11월 23일 오후 세 시였다. 나는 서초동 언덕에 하늘을 뚫을 듯 우뚝 서 있는 회색 타일 건물인 서울고등법원 302호 법정의 방청석 뒤쪽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앞의 피고인석에 푸석푸석 윤기 없는 파 뿌리 같은 백발의 세 사람 뒤통수가 보였다. 힘이 빠진 칠십대와 팔십대 노인 세 명이었다. 그들의 뒷모습에서는 쓸쓸함이 애잔하게 전해져 왔다. 그들은 한때 세상을 호령하던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장이었다.
남재준씨는 평생 군인으로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다. 이병기씨는 주일대사를 하고 대통령 비서실장을 했었다. 이병호씨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평생을 정보관으로 일한 정보기관의 역사 그 자체인 인물이었다.
촛불혁명이 일어나고 대통령과 그들은 구속이 되고 몇 년간 재판을 받아오고 있었다. 변호사들의 화려한 법리논쟁으로 와글거리던 법정이 끝이 나고 마지막으로 그들이 최후진술을 할 시간이 온 것이다.
세 명의 국정원장을 보면서 나는 오래된 사극(史劇)의 장면들이 그들에게 겹쳐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군사반란이 일어나 왕과 그의 측근 장수가 잡히면 목이 잘려 성문에 걸리는 효수형을 받았다. 정적을 처단하는 단순하고 직선적인 방법이었다.
오늘날은 좀더 정교한 법치의 포장을 하고 있다. 촛불혁명 정권의 검찰은 국정원에서 청와대에 간 예산을 대통령에 대한 뇌물이라고 했다. 또 국정원장들을 전문적인 회계공무원으로 간주해서 그들의 예산전용을 국고손실죄로 기소했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는 아무리 혁명재판소의 역할을 한다고 해도 법원의 판사들을 자기모순에 빠지게 했다. 법의 옷을 입혀도 그럴 듯하게 입혀야지 국정원장을 회계직원으로 본다는 것은 지나쳤다.
또 청와대에 간 극히 작은 예산을 박근혜 대통령이 받은 뇌물로 만드는 것도 양심에 걸렸던 것 같다. 일심과 이심의 판사들은 무죄를 선고했다. 법정에서 마주한 사실들을 외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달랐다. 담당 대법관은 국정원장을 회계직원으로 보라고 했다. 하급심 판사들은 대법관의 결론에 절대 복종하게 되어 있었다. 어차피 정권을 빼앗긴 그들은 죽을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정치적 명분은 충분했다. 그들은 박정희의 중앙정보부 이후 정보기관의 적폐에 대한 국민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속죄양으로 법의 제단에 올려진 제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보이지 않는 결론이 나 있고 법이라는 포장만 씌운 재판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법정에서 행해지는 혁명 정치였다. 나는 국정의 사실상 이인자급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던 현대판 장수인 그들이 최후에 어떤 진술을 할 것인지 궁금했다.
“피고인 남재준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으면 하세요”
재판장이 육군참모총장 출신 전 국정원장에게 말했다. 남재준 전 국정원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는 성대에 이상이 생겨서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게 끝이었다. 한없이 하고 싶은 말과 울분을 침묵으로 대신하는 것 같았다.
“다음 이병기 피고인 마지막으로 할 말은?”
대통령 비서실장을 하고 주일대사를 하던 전 이병기 국정원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가 대통령에게 뇌물을 줬다고 해서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 뇌물은 국정원 예산담당 직원에 의해 절차를 밟아 청와대 담당 비서관에게 갔습니다. 제 생각으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을 주려고 했다면 몰래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 직접 줬을 것 같은 데 말이죠.”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병호 피고인 최후진술을 하시죠.”
재판장이 그중 최고령으로 여든두 살의 전 국정원장에게 말했다.
“저는 인생에서 이것이 다시없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평생을 정보기관에 몸 바쳐 온 사람으로 말을 해야겠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가 만들고 싶은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중심체가 필요했습니다. 정보기관은 원래 대통령의 눈과 귀가 되는 게 사명입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그의 국정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해 정보기관에게 손과 발의 역할도 맡겼습니다. 제가 처음 들어갔던 시절 정보기관은 가장 애국적인 조직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충성심으로 피가 끓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런 정보기관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보기관은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과오도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정권에 휘둘리고 비난을 받아왔습니다.”
그는 중앙정보부의 모든 과거를 책임을 지고 법의 제단 위에 서 있었다. 그러면서 한 국가가 살아남기 위한 정보조직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 사건의 본질은 권력이 사람들을 네 편 내 편으로 가르고 상대편을 적폐로 몰아 법을 동원해 죽이는 과정입니다. 살벌한 증오가 기승을 부립니다. 대법원의 판결은 법치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통합과 치유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법원은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그의 말은 한 시간 가량 세상이 관심을 끊은 텅 빈 법정의 허공에서 맴돌고 있었다. 평생 개결한 자존심으로 살아온 그는 뇌물범으로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여든 살이 넘은 병든 노인으로 감옥에서 인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력의 한 단면을 본 씁쓸한 날이었다.
●추현섭이 전하는 말 - 여러분 모르는 사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런 슬픈 재판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