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복 목사님과 WEA 대한 논란에 관해 의견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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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트루스포럼의 김은구 입니다.
2022보수주의컨퍼런스에 김상복 목사님을 모신 것을 우려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글을 씁니다. 그런 우려를 가지고 계신 분들께 이 글을 공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면 truthforum.kr@gmail.com 로 보내주시 바랍니다.
제기해 주신 문제는 트루스포럼을 아껴주시는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WEA에 대한 우려는 저도 평소 공감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상복 목사님을 모신 것은 제가 대학시절 자유주의 신학에 영향을 받아 괴로워하던 때에 극동방송에서 김상복 목사님의 말씀을 우연히 접하고 자유주의 신학의 문제점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트포의 5주년을 감사드리는 예배의 마음으로 김상복 목사님을 모셨습니다.
WEA이슈는 김상복 목사님께서도 가장 심하게 공격을 받으신 주제입니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이에 대한 발전적인 논의가 진행되어서 한국교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이해한 내용을 서두에 미리 말씀드리면, 선한 의도를 가지고 WEA에 참여하신 많은 분들의 의도와는 달리 WEA가 변질된 부분이 있고, WEA가 표방하는 복음주의 자체가 자유주의 신학에 잠식당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목사님께서도 이런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계시고, 건강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제가 김목사님과 많은 교제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김목사님께서 트루스포럼을 응원하고 계신다는 얘기를 지인 분들을 통해 전해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컨퍼런스에 모시면서 김목사님과 직접 말씀을 나누었는데 거짓에 휘둘리고 있는 대한민국의 위기상황에 대해 누구보다도 염려하고 계신 것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트루스포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서울대 기독인들 안에서도 트루스포럼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소위 좌파적 시각을 가진 동문들, 문재인 대통령에 많은 기대를 가진 사람들은 트루스포럼을 탐탁치않게 여기며 저에게 직접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서울대 기독동문들에게 폭넓은 신망을 받고 계신 김목사님께서 트루스포럼을 응원해 주신다는 사실이 제게는 사실 많은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이번에 김목사님을 모신 것은 서울대 기독인들에게 트루스포럼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아무쪼록 이번 기회에 김목사님에 대한 부적절한 비난도 어느정도 정리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1. 자유주의 신학의 문제점
트루스포럼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경계하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 있습니다. 2020보수주의 컨퍼런스에서는 이영진 교수님을 모시고 도올 김용옥 교수의 문제점에 관해 지적했고, 저 역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유주의 신학의 문제점을 지적해 왔습니다. 다가오는 가을에는 강동선 목사님의 책 '도올의 기독교관을 비판함'을 출판할 예정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 이성을 절대시하는 모더니즘에 바탕을 두고 시작된 신학적 사조로서 인간의 이성과 감정,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재단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 이성을 절대시 하고 인간 이성에 기반한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시도는 프랑스혁명에서 시작해서 마르크스, 오늘날의 리버럴, 세속적 인본주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동성애를 선천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성경을 여기에 맞춰 재단하는 퀴어신학, 가난한 자의 구제를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위에 올려두고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보편적인 구원을 민중에 한정하며 인본주의적 자기 의를 추구하면서 예수님을 민중해방운동가로 만들어 버리는 민중신학, 해방신학 등이 자유주의 신학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은 변질된 복음이고 이단입니다. 나아가 자유주의 신학은 좌파 진영의 이론적 배경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유럽과 미국 사회를 무너뜨리는 원인이 되어왔습니다. 건강한 신앙은 건강한 사회의 근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기독교 세계관에 바탕을 둔 기독교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트루스포럼은 자유주의 신학의 문제점을 꾸준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2.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대응의 방향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대응은 유럽에선 신정통주의로, 미국에서는 근본주의와 복음주의라는 흐름으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모두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한 흐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일정한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신정통주의로 분류되는 칼 바르트는 키에르케고르의 영향을 받아 주관적 실존주의를 차용하여 이성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주관적 실존주의는 진리의 상대성을 표방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연결되어 자유주의 신학을 대항하기 위해 제시된 이론이 자유주의 신학에 문을 열어주게 되는 결과를 야기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에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장신대의 안타까운 모습은 이런 신학적 입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신정통주의는 '종교적인 사회주의'라는 미명 아래 기독교와 사회주의의 대화를 시도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무신론적 인본주의에 기반한 사회주의 사상이 신학 안에 침투하는 창구가 되어버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근본주의와 복음주의를 구분하는 것은 어쩌면 도식적인 것입니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는 것을 근본주의라고 한다면 복음주의와 근본주의는 차이가 없습니다. 복음을 선명하고 명료하게 선포하는 것을 복음주의라고 한다면 복음주의는 곧 근본주의입니다.
이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재단하는 자유주의 신학과 진화론이 창궐하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수호하려던 순수한 신앙인들을 근본주의자로 낙인찍는다면 저 역시 그 낙인을 달게 받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근본주의와 복음주의를 구분하는 것은 자유주의 신학을 비롯해서 신학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 나아가 신앙이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에 있습니다.
3. 근본주의, 복음주의의 차이점과 문제점
소위 근본주의는 분리적이고 배타적인 성향을 강하게 보입니다. 반면 복음주의 계열은 연합과 일치를 강조하며 대화와 소통 그리고 사회적 참여를 시도합니다. 특히 지성적이고 학문적인 노력을 계속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근본주의는 편협하고 복음주의는 진취적인 듯 하지만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 생각으론 신앙에 관해서는 근본주의적 입장이 당연히 필요하고, 타인을 대하는 입장에 관해서는 복음주의적 접근이 당연히 필요합니다.
근본주의는 사회문제에 소극적이고 배타적인 경향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강렬하게 비난하며 매도하는 성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사회와 분리되어 반문화적, 반지성적 성향을 띄면서 맹목적인 신앙을 강요하는 것처럼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복음주의 계열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주의가 적극적으로 대화와 소통을 시도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이지만, 교회를 파괴하려는 세력의 교묘한 접근에 더 많은 빌미를 줄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로 교회는 사회주의자들의 위장연대전술인 통일전선전술의 가장 손쉬운 먹잇감이 되어 왔습니다.
나아가 지성적인 대화와 접근을 강조하는 것이 복음주의의 장점일 수 있겠지만, 또한 그런 태도가 복음주의가 싸워 온 자유주의 신학에 또 다시 문을 열어주는 창구가 될 수 있다는 무서운 현실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더 이상 단순한 기우가 아닙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복음주의를 표방하면서 유신진화론을 주장하는 복음주의 좌파 그룹이 존재합니다. 이들은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말하면서 동성애 등 여러 이슈에 관해 결국 자유주의 신학과 다르지 않은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제 복음주의 진영은 '신복음주의는 신자유주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박형룡 목사님의 경고를 다시 한 번 새기고 현재의 모습을 돌아보며 나아가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4.인간 이성의 한계
건강한 이성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종교개혁은 건강한 이성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회복한 일련의 사건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이성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 하나님의 자리를 대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 이성으로 재단해 버리는 것은 말씀의 회복이 아닌 말씀의 변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복음주의 진영 일각에서 지지하고 있는 유신진화론은 얼핏 보기엔 하나님을 인정하면서 과학적인 연구들을 존중하는 태도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타협하여 정통적인 구원론과 인간론 등에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과학을 근거로 하나님의 말씀을 재단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인 퀴어신학도 과학과 이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 성경을 재단한 것입니다. 퀴어신학은 동성애의 선천성을 지지하는 과학적인 연구 결과들을 기반으로 태동했습니다. 동성애의 선천성을 과학으로 전제하고 신학이론을 발전시켰고 일부 국가들은 이에 맞춰 법과 정책을 정비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선천성을 지지하던 과거의 연구들에 문제가 있음이 밝혀졌고, 동성애의 선천성을 부정하는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퀴어신학은 결국 '과학'이라고 믿었던 특정한 견해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하는 만행을 자행한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중요한 교훈을 한 가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과학과 지성, 이성이라는 것은 당대의 학문적 패러다임 안에서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겸허히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과학과 이성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해석하려 할 때에도 이런 겸허한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입니다.
5. 근본주의와 복음주의, 긴장과 협력
근본주의와 복음주의 모두가 인간이성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을 재단하는 자유주의 신학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태동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된 두 갈래의 흐름입니다.
역사적으로는 프린스턴신학교가 자유주의 신학에 빠져버리자 메이첸 교수가 프린스턴에서 나와 웨스트민스터신학교를 설립했습니다. 메이첸의 제자인 칼 매킨타이어는 근본주의적 성향을 강화해 나아갔고 또 다른 제자인 해럴드 오켄카는 근본주의의 배타적 성향을 비판하며 풀러신학교를 설립했습니다. 견해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칼 메킨타이어는 급진적 근본주의로, 해럴드 오켄카는 후기복음주의 또는 신복음주의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이 두 진영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 관계가 존재해 왔습니다. 근본주의는 복음주의를 혼합주의라고 비난하고, 복음주의는 근본주의를 교조적이라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거시적으로 본다면 근본주의는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는 파수꾼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는 것이고, 복음주의는 복음의 지평을 넓히고 교회의 사회적 참여를 적극적으로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칼 매킨타이어는 근본주의로 분류되는 국제기독교연합회의 ICCC를 설립했고, 오켄카가 설립한 전국복음주의협회NAE는 현재의 세계복음주의협회WEA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제3회 트루스아카데미에서 민중신학과 해방신학에 대한 강연을 진행해 주신 조영엽 목사님께서는 칼 메킨타이어 박사를 보좌해 국제기독교연합회 ICCC 이끄셨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모시는 김상복 목사님은 WEA의 회장으로 계셨습니다.
두 분 모두 귀하고 훌륭하신 분들입니다.
6. 김상복 목사님에 대한 우려에 관해
김상복 목사님께서 WEA 회장으로 계셨다는 점을 이유로 김목사님을 공격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관련된 자료들을 다시 한 번 자세히 찾아보았습니다.
WEA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그 문제점을 비판하고 경계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필요한 일입니다. 사실 저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한 지적들은 우리의 신앙을 순수하게 지켜 내기 위한 소중한 노력이고 자산입니다.
하지만 김목사님이 직접 쓰신 글과 칼럼을 보면 김목사님께서는 전형적인 복음주의의 입장을 대변하고 계신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자유주의 신학을 경계하며 타협하지 않고, 복음을 지키면서도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최대한 협력하고 적극적으로 사회적 문제에 대응하려는 자세가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WEA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우려할 수도 있고, 소속된 인사들의 부적절한 행위나 언사에 대해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자유주의 신학을 닮아가는 복음주의 좌파의 행태에 대해서는 반드시 지적하고 교정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김목사님 같은 분을 성급하게 프리메이슨이나 사탄의 앞잡이로 매도하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공개적으로 사회주의를 비판하시고 지난 정권의 문제점을 따끔하게 지적하신 분을 그런 식으로 매도하는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접근은 오히려 우리의 신앙을 수호하기 위한 건강하고 정당한 문제 제기를 비합리적인 것으로 전락시켜버릴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김상복 목사님 같은 분께서 자유주의 신학을 닮아가고 있는 복음주의 진영, 특히 복음주의 좌파에 대해 따끔하게 일갈을 해 주시기를, 복음주의 진영이 자유주의와 혼합주의로 엇나가지 않도록 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어 주시기를 정중하게 부탁 드리거나 호소하는 편이 훨씬 건강한 접근이 아닌가 싶습니다.
7. 글을 맺으며
영적 전쟁에는 타협할 수 없는 분명한 선이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 세상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방법에 관해서는 견해가 나뉠 수 있습니다.
복음의 본질에 관해서는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신앙의 자세를 견지하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지성과 이성을 바탕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설득하는 시도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다만 이런 경우에도 인간 이성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고 우리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섭리를 염두에 두어야 길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노력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세상과는 분리되고 배타적으로 고립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나치 독일 당시 경건한 개신교인들은 경건주의로 인해 산속으로 들어갔고, 독일 사회는 방치되었습니다. 여기에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관용과 포용이 적극적으로 이용당하는 냉엄한 현실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독교 보수주의를 표방하며 사회 안에서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자하는 트루스포럼의 입장에서 중요한 주제였기에 긴 글을 썼습니다. 신학교에 마저 손을 뻗친 세속적 인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시대적 사조를 거스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사명이라 믿기에 계속 나아갑니다. 트루스포럼이 이 사명을 잘 감당해 나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2022.08.26
트루스포럼 대표 김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