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심각한 것은 이것이다. 1948년 4월 김구가 평양으로 향하던 시점, 북한에서는 매일 수천 명의 북한 주민들이 남한으로 남하하고 있었다. 북한은 자신들이 천국 같은 나라를 만들었다고 떠들었지만, 실제로 북한 주민들은 천국(?)을 버리고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미군정청 윌리엄 딘 장관은 김구의 평양행과 남북협상이 본격화되던 시기 다음과 같은 의미 심장한 발언을 남겼다.
"만일 남조선으로부터 하루에 몇천 명이라도 북으로 가준다면 남한에 있는 사람들의 식량배급도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반대로 무슨 까닭인지 그들이 천국이라고 부르는 북한을 버리고 남한으로 오고 있다."
김구의 어리석음을 냉소적으로 비판하는 이승만의 발언 역시 의미 심장하다.
"소련 정책을 아는 사람은 시간 연장으로 공산화하자는 계획으로 간파하고 있는데 한국 지도자 중에는 홀로 이것을 모르고 요인 회담을 진행한다면 몽매하다는 조소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소련 해체 이후 나온 비밀 문건들에는 당시 평양으로 김구를 초청한 것이 소련군정이었다는 것이 밝혀져 있다. 한마디로 이승만과 김구를 갈라놓겠다는 의도였던 것이다.
이것이 객관적 사실에 기초한 김구와 김일성의 평양회담의 실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일부 역사학자들은 김구의 평양 방문을 순수한 민족애의 발로 높이 평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남한의 '김구 신화'는 이렇게 사실을 무시한 채 대중들에게 실상을 감추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던 것이다.
지난 60년의 역사는 거짓이 참을 이긴 선전과 선동의 역사였다. 객관적 사실에만 충실해도 건국의 역사, 건국 대통령의 가치는 빛을 발할 것으로 믿는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그렇게 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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