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시대 | 특별인터뷰-노재봉 전 국무총리, 탄핵 사태는 대한민국이라는 체제에 대한 탄핵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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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노재봉 전 국무총리
“이번 선거는 대한민국이 존재하느냐 사라지느냐, 命運이 달렸던 선거”
글 : 장원재 배나TV 대표 트위터페이스북기사목록프린트스크랩글자 크게글자 작게
⊙ “윤석열, 좌파 혁명에 대해서 투쟁하는 최전선에 스스로 나선 것”
⊙ “대한민국이 제대로 나가기 위한 투쟁을 해야… 協治는 다 난센스”
⊙ “새 정부는 ‘세력 對 세력’이라는 큰 틀에서 상황을 인식하고 대처해야”
⊙ “혁명 노선의 추가 5년 동안 계속 움직였는데, 작동 속도가 너무 느렸다”
⊙ “지방자치 명분 아래 소비에트化 가능성”
⊙ “자유민주주의 강화하는 국제적 체제 강화의 最前線에 서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끝”
인터뷰=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과 학사. 런던대 로열헐러웨이 컬리지 박사(비교연극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경기영어마을 사무총장·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MBC 라디오 앵커, 現 배나TV 대표 / [저서] 《북한요지경;배나TV 장원재입니다》 《끝나지 않는 축구 이야기》 《논어를 축구로 풀다》 《장원재의 배우열전》
사진=조준우
제20대 대선(大選)이 끝났다. 박빙(薄氷)의 승부였다.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대한민국 대선은 국내 문제인가 국제적 이벤트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지금 세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혹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거대한 흐름이 시작된 것은 아닌가. 혼란스럽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현자(賢者)에게 물으라 했다. 대선 이틀 후 노재봉(盧在鳳·86) 전 국무총리를 인터뷰한 이유다.
‘혁명 세력에 맞선 체제 선택의 문제’
탄핵 정국의 와중이던 2017년 1월 10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재벌적폐 청산, 진정한 시장경제로 가는 길’ 토론회에서 기조발언을 했다. 사진=조선DB
― 먼저 이번 대선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 좀 여쭙고 싶습니다. 이번 대선은 표 차이가 1%도 나지 않은 참 아슬아슬한 대선이었는데요.
“제가 평생 국제정치를 공부했고, 북한에 대해 ‘믿을 수 없는 집단’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제 분석에는 제 개인적 견해와 경험이 들어간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그 전제를 바탕에 깔고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제 생각에는, 이번 대선은 어떤 후보를 뽑느냐 하는 문제보다도 정권 교체라고 하는 차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정권 교체라고 하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통치 체제, 영어로 하면 레짐(regime)과 관련되는 겁니다. 대한민국의 레짐을 도로 찾자, 혁명(革命) 세력과 맞선 체제 선택의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 인물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말씀이시네요.
“인물 선택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후보로 나선 사람 중에서 뽑는다고 하더라도, 이번 선거의 의미는 문재인(文在寅) 정권의 성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계승 발전시키겠다는 세력과 그것을 반대하는 세력과의 싸움이었다고 봅니다. 왜 이번 선거가 체제 선택을 건 싸움이 되었느냐.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권의 성격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개인의 이념을 논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통령의 기고(寄稿)나 연설은 그 자체가 고도의 정치적인 행위다. 개인이 아니라, 본인이 속한 정치적 집단의 뜻을 말과 글을 통해 명확하게 밝힌 증거이기 때문이다. 정권 차원의 이념을 공표(公表)한 기록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정권 차원의 공식적인 발언’을 모으고 분석하면, 이 정부가 추구하려고 했던 바가 무엇인지를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베트남민족해방전선 모델
“문재인 대통령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죠. 제가 보기에, 이 말은 혁명을 하자는 뜻으로 보입니다. 좀 격하게 말하면, 대한민국의 존재를 모조리 원초(原初)부터 부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어요. 법통(法統)을 임시정부에다 둔 것도 비슷한 맥락이죠. 대한민국은 국가가 아니라고 하는 식으로 규정을 내린 겁니다.”
― 그렇다면 국가를 새로 만들자는 이야기입니까.
“저는 그렇게 봤어요. 자기들이 생각하는 국가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사상적인 기초를 어디에 뒀느냐. 베트남민족해방전선 모델을 택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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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老)학자의 분석은 외국 매체 기고문을 중심으로 자세하게 이어졌다. 2019년 5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지에 실린 ‘평범함의 위대함, 새로운 질서를 생각하며’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글이다.
“이 글은 기고문입니다. 인터뷰가 아니라, 본인이 일부러 낸 글이라는 말이죠. 이 기고문에 보면, 문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 세력의 생각이 한층 더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거기 처음 나오는 중심 개념이 뭐냐. ‘촛불혁명’입니다. 이 촛불혁명이 어떻게 가능했느냐, 평범한 사람들의 촛불혁명이었다,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그럼 이 글에서 말하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하는 게 뭐냐. 이건 문학적인 표현이고, 그 뒤의 논리적인 구조를 보면 ‘평범한 사람들의 촛불’이라고 하는 것은 ‘대중을 동원한 혁명이었다’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합니다.
이 대목 뒤에 ‘중국은 우리와 운명공동체’라는 주장을 해요. ‘운명공동체’라는 표현은 우리가 ‘전체주의적 대륙 세력’과 연합하겠다, 이런 이야기거든요. 그러니까 미국이라든지 일본이라든지 자유민주 세력이 아니라, 그 대척점에 있는 세력과 운명을 함께하겠다는 말이죠. 중국에 대해서 ‘운명공동체’라고 쓴 것은 국제정치의 맥락에서 보자면 깜짝 놀랄 만한 용어 선택입니다.”
“박근혜 탄핵은 체제 탄핵”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안이 가결됐다. “박근혜 탄핵은 체제 탄핵”이었다고 노 전 총리는 말한다. 사진=조선DB
― 그 글에는 남북 관계에 대한 언급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있죠. 남북 관계에 있어서는 ‘생명공동체’라는 단어를 씁니다. ‘촛불혁명’ ‘운명공동체’ ‘생명공동체’라는 세 표현을 합해서 보면, 1948년 이후 성립해온 대한민국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돼버려요. 그래서 제가 서두에 ‘혁명을 기도한 것’이라고 한 겁니다.”
― 혁명을 말했더라도, 그것이 행동으로 드러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혁명의 기도가 행동으로 어떻게 나타났느냐. 그런 사고(思考)를 구조로 정치를 하려면 기존의 대한민국 체제를 파괴하는 일이 급선무겠죠. 파괴는 상징을 부술 때 효과가 커집니다. 저는 혁명을 꿈꾸는 세력이 박근혜(朴槿惠) 전 대통령을 탄핵한 것이라고 봅니다. 제가 보기에 ‘박근혜 탄핵’은 박근혜라는 대통령이 가진 대한민국의 상징성을 훼손하고, 나아가 체제를 파괴하려는 시도였습니다. 박근혜 개인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실상 대한민국 체제에 대한 탄핵이었죠.”
―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은 야당의 능력만으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여당에서도 찬성파가 다수 나오면서 인용이 되었습니다.
“그렇죠. 박근혜가 속하고 있는 당의 한 파벌이 탄핵 대열에 합류하고 힘을 실어줬잖아요. 제 견해로는 이 사람들은 권력욕만 있었지, ‘박근혜 탄핵’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전혀 몰랐던 겁니다. 그러니까 상황이 고약하게 됐죠. 박근혜가 속했던 당까지 박 대통령을 탄핵한다고 나섰으니 이게 쉬울 수밖에요. 무혈(無血)로 넘어간 겁니다. 그렇게 대한민국 체제를 흔들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는 세력이 정권을 잡게 된 겁니다.”
박근혜 개인의 정치력, 국정 운영 능력 문제와는 별개로, ‘탄핵’이라는 사건을 둘러싸고 이처럼 엄청난 권력투쟁이, 어쩌면 국제적인 세력투쟁이 전개되었다는 해석이다. 독일 기고문에 대한 분석이 이어졌다.
중산 계급의 불만
“체제를 파괴하고 새로운 체제를 만들겠다고 하는 전체주의적인 발상을 했는데, 제가 ‘평범한 사람’ ‘운명공동체’ ‘생명공동체’ 같은 말을 잘 살펴봐야 한다고 했잖아요? 독일 신문에서 원문을 초역한 원고를 보니까, 이 단어들이 전부 다 누락이 됐어요. 왜 이런 단어들이 빠졌느냐, 이 점을 봐야 합니다. 이런 말들은 나치스를 연상시키는 단어들입니다. 그리고 독일의 ‘정치적 낭만주의’와 연결되거든요. 여기에 대해서 국내 언론은 아무 비판을 하지 않았습니다.”
―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속한 정치 세력이 대한민국의 체제를 바꾸는 활동을 했다고 보십니까.
“했죠. 혁명 노선의 추(錘)가 5년 동안 계속 움직였는데, 작동 속도가 너무 느렸어요. 그래서 계획이 어긋난 겁니다.”
노 전 총리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도의 국민 수준과 경제력을 갖춘 나라에서 5년 안에 혁명을 완성하려면, 무엇보다도 지식인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肅淸)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체제를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고 빠르게 진압해야 한다. 그런데 어정쩡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북한이 ‘삶은 소대가리’라며 문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것도 이해가 가는 발언이라고 했다. 숙청의 전문가(?)인 북한이 보기에는 ‘과감하게 나가지 못해 찬스를 놓치고 있는 것’에 대한 분노의 표현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가 속도를 내지 않은 건, 정책에 대한 반동(反動)을 줄이면서 차근차근 나아가자고 판단한 결과겠죠. 혁명을 추구하려면 피를 흘려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잡지 못했느냐. 이 사람들이 중산(中産) 계급을 못 잡았습니다. 중산층은 어느 나라에서나 묘한 계급입니다. 철저히 이해 중심으로 나가는 성격이 있거든요. 그런데 문 정부는 이 계급에 대고 포퓰리즘적인 정책만 썼습니다. 그러면 중산층이 가지고 있는 욕망에 대해서 혹은 활동에 대해서 보상이 안 되죠. 그러니까 재정 적자(赤字)가 나고, 세금을 올려서 적자를 메우고, 이런 짓을 했단 말이에요. 그래서 중산 계급의 불만이 쌓여왔던 겁니다.”
“文 청와대 비서실, 혁명委처럼 보여”
2018년 3월 20일 조국 민정수석비서관(가운데)은 개헌안을 발표했다. 사진=조선DB
문재인 정부는 정말로 혁명을 꿈꿨을까? 대한민국을 뿌리부터 바꿔놓으려고 한 것일까?
“문 정부 비서진의 움직임을 보고, 제가 많이 놀랐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비서진이라고 하는 것은 공산주의나 전체주의 세계의 그것과는 역할과 기능이 달라요. ‘익명(匿名)의 열정’을 가지고 일하고 절대로 나서면 안 돼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비서진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만 보좌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 사람들이 나서고, 심지어 행정관이라고 하는 사람도 나서서 힘을 휘두르더군요. 이건 정상적인 자유민주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비서진이 아닙니다. 혁명위원회처럼 보였어요. 가령 예를 들자면 나중에 법무장관도 합니다만, 조국(曺國) 같은 사람이 초대 민정수석비서관이었잖아요. 민정수석이라는 사람이 2018년 3월에 개헌안(改憲案)을 들고 스스로 낭독까지 했습니다. 이건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개헌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 개헌안이라고 하는 것도 내용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요.
“대통령이 국가의 원수(元首)가 아니라는 규정이 있었고, ‘자유’라는 단어가 다 빠져 있었죠. 그리고 ‘사람’이라고 하는 단어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건 흔히 하는 말로, 소위 마르크시스트식 휴머니즘이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文, 黨을 前衛부대로 만드는 데 실패”
그렇다면 윤석열(尹錫悅) 당선자의 당면 과제는 무엇일까? 대한민국이 혁명전야(革命前夜)까지 몰렸었다면,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 아닐까?
“지금 제가 이야기한 그런 내용이 포함되는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서 북한하고 낮은 단계라도 연방제(聯邦制)를 하겠다, 이렇게 나온다고 합시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고 높은 단계의 연방제고 간에, 체제가 같지 않으면 연방제는 안 됩니다. 할 수가 없어요. 바로 전쟁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지난 5년 동안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 여간 위험한 고비를 가까스로 넘어온 겁니다.”
노재봉 전 총리가 보기에, 문재인 대통령의 계획이 속도를 내지 못한 이면에는 이 밖에 다음과 같은 이유도 있다. 먼저 정당(政黨)을 우군으로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혁명을 하려면 세력이 있어야 합니다. 당(黨)을 전위부대, 뱅가드(vanguard)로 만들어야 했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말았어요. 두 번째는 외교적인 관계에 있어서 또 문제가 생겼죠.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본다면 숫자로서는 1%도 안 되는 차이로 윤석열 후보가 승리했지만, 이제부터는 새로운 정치적인 내전(內戰)이 일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준거틀이 없는 사회
― 대중동원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촛불시위 때는 비정치적인 일반 시민들의 참여도 많았습니다. 이건 어떻게 봐야 할까요.
“시민들이 왜 그렇게 호응을 했느냐. 국가를 운영하다 보면 여러 가지 잘한 것도 있고, 못 한 것도 있고, 이렇게 섞여 나오지 반드시 잘한 것만 있는 건 아니거든요. 어느 시대이건 당대의 역사적인 조건에 따라서 어떤 정책은 성공하고 어떤 정책은 실패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들고나왔던 것은 노멀(normal)한 프로세스를 거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는 혁명 정부를 만들려고 했고 그 혁명 정부에 의해서 체제를 바꾸려고 했어요. 그런 혐의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농업 사회에서 급격하게 산업 사회로 진화하고 또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정치 세계에서는 한 국가가 이렇게 급속한 발전을 이루면 반드시 부작용이 따릅니다. 그런데 이 부작용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느냐.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시대부터 내려오던 전통적인 정치 체제가 모조리 철저하게 파괴되었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준거(準據)틀이 없어져 버린 겁니다. 어느 개인이나 국가나, 보통 살아 나가는 데서 모델이 되는 준거틀이 있습니다. 우리는 식민지를 겪고 바로 6·25가 나고, 그래서 그나마 남아 있던 준거틀의 흔적까지 모조리 없어진 상황이었단 말이죠.
그럼 남는 것은 뭐냐. ‘나와 남과의 비교’밖에 없어요. 비교 관념이 강하게 되면 앙심(怏心)을 품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남 잘되는 것을 못 봅니다. 농업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급격하게 진전하면서 전통이 파괴되었는데, 그 결과로 이런 심리적인 현상이 나타나게 된 거예요. 여기는 이성(理性)이 잘 안 움직이는 영역입니다. 그러니까 감성(感性)에다가 호소하는데, 대중이 여기에 쉽게 호응을 한 거죠.
가령 예를 들자면 옛날에 촛불혁명을 할 적에, 한 인기 방송인이 나와서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헌법 1조부터 쫙 나가면서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걸 가지고 설명하는데 어떻게 하느냐. ‘주권(主權)을 국민이 가지고 있고 국민이 주인이라고 그러는데 우리가 언제 한번 주권을 행사해봤냐’ 이런 식으로 나가요. 말하자면 대의정치(代議政治)도 모조리 무시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하니까 전부 호응해서 나간다 이 말이에요.”
“‘대한민국’은 없고 ‘우리나라’”
2020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에서는 ‘우리나라’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사진=뉴시스
노 총리가 보기에, 이런 식의 선동(煽動)이 갖는 문제점은 몇 가지가 더 있다. 국제관계를 악용한다는 점이다.
“누군가를 증오(憎惡)하려면 대상이 있어야 하잖습니까.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미움’을 근거로 대중을 동원했어요. 일본과 미국은 제국주의고, 이전까지의 대한민국은 괴뢰 정부고. 문 대통령이 이승만(李承晩)이나 박정희(朴正熙)를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거론한 적이 있습니까? 없잖아요.
그리고 건국절(建國節)이 있습니까? 지금 한국에 없잖아요. 작년인가 8·15 기념식 때도 보면 대한민국이라는 글자는 하나도 없고 우리나라라고 하는 게 나와요. 세상에 ‘우리나라’라는 국호(國號)를 가진 나라가 세계 어디에 있습니까. 이런 식으로 파괴했다, 이 말이에요.”
― 대중의 감성에 호소했고 대중을 동원해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달성에 썼다, 이런 말씀이신가요? 대중의 ‘자발적 참여’가 아니라고 보시는 건지요.
“표면적으로는 ‘자발적 참여’입니다만, 개인들이 판단을 내리려면 ‘정보’가 필요하잖아요? 그 정보가 왜곡되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저는 촛불혁명 이전에 누군가가 대중적 실험을 적어도 한두 번 크게 했다고 봅니다.”
― 그게 어떤 건가요.
“첫째 미선이 효순이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비극적인 사고죠. 하지만 본질은 굳이 말하자면 일종의 교통사고인데 이걸 반미(反美)와 연결시켜 획책했죠. 그다음 나온 것이 광우병(狂牛病) 소동입니다. 미국 쇠고기가 그렇게 문제가 많다면, 미국이나 우리나라에서나 사망자가 다수 나왔어야 할 것 아닙니까. 사실상 큰 문제가 없는 일인데 사람들이 유모차까지 끌고 나와서 데모했잖아요. 이명박(李明博) 정권도 큰 타격을 받았고. 이것이 ‘대대적인 실험의 성공’이었습니다. 세 번째 실험이 바로 박근혜를 탄핵한 겁니다.”
“체제 경쟁은 전쟁 아니면 흡수”
― 소설가이자 사회평론가인 복거일(卜鉅一) 선생은 촛불시위를 ‘투표에서 진 것을 시위로 만회하려는 시도’였다고 평하기도 했는데, 그렇다면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대규모 시위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까.
“정치적 내전은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절대로 안 끝납니다. 예를 들어 지방자치(地方自治) 문제가 있어요. 지방자치를 소비에트(soviet)화, 그러니까 이른바 민주적 중앙집권제로 가져가려고 하는 세력이 나올 겁니다. 국회도 더불어민주당이 절대다수 세력을 차지하고 있잖아요. 절대다수당이 독하게 밀어붙이면, 지방자치라는 명분 아래 소비에트화를 이룩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체제를 완전히 깨부수고 낮은 단계의 연방으로 나갈 수 있는 겁니다.
체제경쟁은 전쟁(戰爭) 아니면 흡수(吸收)라야 끝납니다. 다른 선택지는 없어요. 전쟁 아니면 흡수뿐이에요.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연방제는 불가능합니다. 남북의 통치 체제가 다르니까요. 쉽게 예를 들면, 미국의 남북전쟁도 그런 것 아닙니까, 링컨이 무력(武力)으로 제압을 한 겁니다. 어쩌면 비슷한 현상이 앞으로 한반도에서 벌어질 판이죠.”
―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다음 행보는 어떻게 보십니까.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전위조직을 못 만들었기 때문에 목표한 기대치를 달성하지 못했죠. 권력의 속성 가운데 하나는 ‘행사하는 것이 재미있다’는 겁니다. 권력을 잡고 정책을 집행한 경험이 적은 분들은 그래서 방향을 잃기 쉽습니다. 국가 예산배분권도 자기들한테 있으니까 시민단체 쪽으로도 지원이 적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시민사회가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어요.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5월까지인데, 남은 임기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코로나19만 해도, 여러 가지로 이용해보려다 실패한 것 아닌가요. 행정부가 어떤 일을 시행할 때 포장을 하면, 일반 국민들은 잘 알아보기가 힘들어요. 그것이 ‘선동 선전 전술’이죠.”
“協治는 무정부 상태로 들어가는 것”
― 대한민국이 궤도에서 이탈했다는 말씀이신데, 그렇다면 다시 본궤도 위로 올라서는 방안은 무엇입니까? 신임 대통령은 무슨 일을 해야 합니까.
“대한민국 체제를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고, 대한민국이 제대로 나가기 위한 투쟁을 해야죠.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신임 대통령이 해야 할 건 많죠. 많은데, 우선 무슨 협치(協治)를 한다느니 뭐 어쩌고 하는 건 다 난센스입니다.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협치라고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요. 협치는 무정부(無政府) 상태로 들어가는 겁니다.”
― 왜 그렇습니까.
“현재 우리나라가 세계사에서 최장의 휴전(休戰) 상태에 있지 않습니까. 전쟁 상태가 끝이 안 났단 말이에요. 이런 나라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고 국가 전복 세력에 맞서 싸우려면 대통령제 아니면 안 됩니다. 내각제는 불가능하고, 실시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이 제 소견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리더십의 모습은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소신 있고 강력한 리더, 앞장서는 리더가 있어야만 대한민국이 굴러갑니다. 제대로 된 리더가 혁명적으로 이끌어나가지 못하면 난장판이 됩니다. 난장판이 되면 나라가 종북 좌파에 끌려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 것들에 국민들이 유혹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 선거에서 승리한 국민의힘은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할까요.
“제가 보기에는 걱정스러운 점이 많습니다. 정상적인 정당이 아니니까요.”
― 왜 그렇습니까.
“정당이 움직이려면 세 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이념(理念)이 최우선이고, 그다음에 조직이 있어야 하고, 그다음이 자금이죠. 돈은 있다고 칩시다. 국가에서 보조해준 것도 있으니까. 조직이라고 하는 것도, 지방마다 정치권에 들어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뼈대는 갖췄다고 합시다.
그런데 뭐가 문제냐. 제가 보기에는 국민의힘에는 이념이 없어요. 이념이 없으면 정당이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가령 이준석 당대표를 선출할 때, 대통령 후보를 뽑을 때 여론조사를 반영했죠. 이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여론조사를 해서 대표나 후보를 뽑는다면 당원은 뭡니까? 당은 당원의 의견을 반영해야죠. 여론조사는 참고 사항만 될 뿐이고, 후보 선출 등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기준이 되면 안 됩니다. 정당은 이념으로 여론을 끌고 나가는 조직이지 여론을 따라가는 대상이 아니니까요. 여론조사로 당대표와 대통령 후보를 선출한다는 것은 정당의 존립 근거를 스스로 허무는 짓입니다. 제가 국민의힘이 정상적인 자유민주 체제에서의 정당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점에서는 여야가 비슷합니다.”
“민주당, 우군 못 만들어내”
― 더불어민주당은 그래도 국민의힘에 비해 이념적 일관성은 있어 보입니다.
“세계 정치사를 보면, 혁명을 추진했던 정당들은 당이 혁명의 전위대 역할을 했죠. 정상적인 자유민주주의에서의 경쟁 관계에 서는 그런 정당이 아니고, 얼치기 지식층을 흡수해서 전위부대로 만들었죠. 더불어민주당은 우군(友軍)을 못 만들어냈습니다.
게다가, 대한민국 전체를 바꾼다는 논리 아래 대한민국 전체를 타격 대상으로 본 것 아닐까요? 그러면 목표가 분산됩니다. 정권을 잡고 보니까 뭐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게 된 겁니다. 죄의 여부를 막론하고 전 정권 인사들을 일부 구속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는 동력을 얻을 수 없었던 겁니다. 정권이 성공하려면 지식층들이 합류해야 합니다.
혁명하는 사람들은 합류를 거부하는 지식인은 숙청했었죠. 문재인 정권은 그런 면에서 낭만적이었습니다. 전국적인 조직, 혁명적인 세력을 만드는 데 실패한 겁니다. 전체를 파괴하려고 했지만, 뭐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모르니까 네거티브하는 것밖에는 못 했어요.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면 더불어민주당은 집권 기간 5년을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조직적으로 저항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의회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정당의 조직적인 저항, 바로 그 점이 신임 대통령의 가장 큰 난제가 되겠군요.
“그렇죠. 민주당이 만만치 않고, 엄청난 반발이 나올 겁니다. 지금과 같은 의석 구도에서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고 하더라도 그 거부권이 정치적 의미를 획득할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그다음에 6월 지방선거가 있잖아요? 아까 이야기했다시피 소비에트화 하는 문제가 아직 남아 있어요. 민주당 사람들은 자기들이 졌다고 생각 안 할 겁니다. 계속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하겠죠. 그래서 현재 수준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선전 선동 정치가 전개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증오의 대상화’ 작업
― 선동 정치는 어떤 수단을 가지고 어떻게 전개할까요.
“어떤 매체를 이용하느냐보다는 선전 선동의 방향을 봐야죠. 사회 각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증오심을 키울 겁니다. 대통령과 국민의힘 의원들의 도덕성도 공격할 겁니다. ‘증오의 대상화’ 작업이죠. 정치적으로 누군가를 증오하게 만들려면, 그 반대편에 ‘도덕적으로 고결한’ 인물을 미리 만들어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의 증오심을 증폭시킬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모든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우려면, 존경의 대상이 되는 인간들이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할 정도’의 도덕성을 갖춰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게 선동이 잘 안 됩니다. 뭔가 제대로 선동대를 만들고 이끌고 나가려면, 그쪽의 핵심 세력이 선동대로 나설 사람들의 생활을 100% 대신 책임져줘야 합니다. 누군가가 ‘존경의 대상’이 되는 인물의 생활비+활동비+품위유지비를 다 내줘야 한다는 뜻이죠.
이것과 관계가 있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작년에 더 걷힌 세금이 64조인가 뭐 그렇다고 하죠? 이건 경제부총리부터 전부 책임져야 하는 중대 사건입니다. 국가를 이렇게 운영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아요. 그런데 국장 하나 바꾸고 말았죠. 그런데 그 돈은 다 어디 갔습니까. 혹시 누군가가 어디에 쌓아놓고 준비 작업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외부에서도 작업이 들어올 겁니다. 국내외적으로 여러 가지 작업이 진행되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헌법수호 세력, 자유민주 세력은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무엇보다도, 신임 대통령이 여기에 대해서 이념적으로 확실하게 무장해야죠. 그동안 대한민국이 혁명적인 상태에 놓여 있었고, ‘대한민국을 파괴하려는 분위기가 국내외에서 계속될 것’이라는 인식을 해야 합니다.
자유민주 체제에서는 기본적으로 개인과 국가 사이의 중간체로서 시민사회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조금 태동을 했습니다만,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형해화(形骸化)되고 말았죠. 그래서 시민사회가 결집하기 어렵습니다. 싸울 수 있는 근거지가 없어요. 이 점을 새 정부는 유념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행정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 시민사회의 역할은 어떤 것입니까.
“새 정부가 들어서면 먼저 헌법 정신에 입각한 체제로 나라를 정상화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지금 언론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도 많이 낮아졌죠. 그래서 시민들이 어디서 정보를 얻고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지 난감해합니다. 이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쪽으로 쏠리고 또 저 사람이 저렇게 이야기하면 저쪽으로 쏠리고 이럴 거란 말이에요.
이념을 전파하는 핵심을 만들어야 합니다. 시민단체죠. 시민이 힘을 갖지 못하면 윤 정부의 지원 세력도 없는 겁니다. 현명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지금 형편으로는 대한민국이 혁명적인 투쟁의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에, 해방 직후 대한민국 성립을 두고 좌우가 대립했던 것과 비슷한 양상으로 들어가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체제 통일이 먼저다”
노 전 총리는 ‘통일’과 ‘민족’이라는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조선DB
― 국제관계에 대해서도 여쭙고 싶습니다. 통일은 우리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하기 싫다고 미룰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남북뿐 아니라 미, 중, 일, 러 등 주변국과도 긴밀한 협의가 선행되어야 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우리 시대의 신화(神話) 가운데 하나가 ‘통일’과 ‘민족’입니다. 같은 민족이라고 해서 통일되는 것이 아니고 타협이 안 되는 두 세력이 있으면 갈라서는 게 세계사의 흐름입니다.
영국과 미국을 보세요. 미국 독립 이전에는 사람도, 사회를 운영하는 방식도 공통적이었잖아요. 타협이 안 되면 상황에 따라서 독립으로 나가는 겁니다. 종족(種族)적인 의미에서, ‘같은 민족이니까 반드시 하나로 뭉쳐야 한다’ 이런 건 없습니다.
히틀러가 ‘아리안족은 전부 다 하나로 뭉쳐서 나가야 한다’고 했어요. 세계 정복하자는 말 아닙니까. 그런데 아리안족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독일에만 있나요. 온갖 나라에 다 흩어져 있잖아요.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통일은 필연이 아니고 절대선(絶對善)은 더더욱 아니다’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그런데 종족적인 것을 가지고, 예를 들어 ‘우리는 단군 조상의 한 핏줄이고 민족은 하나, 우리 민족끼리’ 뭐 이런 식으로 선전하면 누구라도 속아 넘어가기 쉽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대한민국의 유엔 가입을 김일성이 그렇게 반대했던 이유가 있어요. 1991년 9월에 남북이 각각 독립된 주권국가로서 유엔의 회원이 됐습니다. 사상 처음으로 우리가 정상적인 국제정치 사회의 정회원이 된 겁니다. 북한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지금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있는 겁니다. 두 개의 국가가 있는데, 북에 있는 국가는 원초부터 ‘남조선은 괴뢰 정부다’라고 했고 무력을 써서라도 통일을 하는 게 목적이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 권력의 존립 정당성은 ‘통일한다’고 하는 겁니다. 6·25 때 시도했다가 실패했지만, ‘무력으로 통일한다’고 하는 거예요. 전쟁을 불사하는 겁니다.
이 점을 분명하게 알면 ‘하나의 민족’ ‘우리는 하나다’ 이런 선전에 속아 넘어가지 않아요.
또 하나, 남북 간에는 선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는 국민을 기초로 하는 공화국이고 저쪽은 인민을 기초로 하는 공화국입니다. 국민을 기초로 한다는 것은 개개인의 자유권(自由權)을 근거로 하는 국가라는 얘기입니다. 반면에, 저쪽은 개개인이라고 하는 존재는 인정 안 합니다. 저쪽 헌법에도 있다시피, 인민이라고 하는 것을 하나로 취급합니다. 그래서 ‘하나는 모두를 위하고 모두는 하나를 위한다’라는 구절이 북한 헌법에 들어가 있어요.
이것은 독일에서 출발하고 일본을 통해서, 그리고 러시아 혁명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들어온 개념입니다. 이것이 전체주의(全體主義) 개념이거든요. 그래서 지금 통일에 대해 선전 선동을 많이 하지만, 지금 우리는 ‘통일을 꼭 해야 하는 하나의 민족’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국민으로 구성된 주권국가로서 국제사회 정회원입니다. 북도 대한민국의 유엔 가입을 반대하는 데모를 엄청나게 하고 국제적으로 로비도 했지만, 세계적인 흐름을 견디지 못하니까 결국엔 유엔 가입을 했거든요.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기 전에 뭐라고 그랬습니까. ‘남한만의 유엔 가입은 영구 분단의 획책’이라고 저주의 말을 쏟아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자기네들이 먼저 가입을 신청했죠. 우리는 북의 가입 신청 여부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들어가게 돼 있었고. 그래서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있는 것인데, 이것이 평화적으로 가려면 두 나라의 체제가 먼저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체제가 통일되면 굳이 통일이 안 되더라도 괜찮아요. 연방도 가능하고, 미국과 캐나다처럼 갈 수도 있고요.”
자유민주파 vs 전체주의파
― 그럼 체제 통일이 안 되고 있는 원인은 무엇입니까.
“중국 때문이죠. 지금 시진핑이 해온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게 내용을 따져보면 동북공정이 아니고 조선반도(朝鮮半島) 공정입니다. 옛날에 여기가 다 자기네 땅이었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안중근(安重根)이나 임시정부나 모두 중국에 사는 조선족이 중국을 위해서 투쟁을 한 것이다, 이렇게 주장합니다.
법통을 임시정부에 두면 법통이 임시정부에 있으니까 ‘대한민국은 아직 국가가 아니다’라는 지점까지 논리를 밀고 나가죠. 바로 이겁니다. 지금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인하고 부정해왔어요. 이게 말이 됩니까.
그래서 이러한 현실을 마주하고, 저는 우파, 좌파라고 하는 용어는 잘 안 씁니다. 합당하지 않아요. 좌파, 우파라고 하면 국가를 건국한 정당성과 근거에는 피차간에 이견(異見)이 없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같이 준수하면서 정책 아이디어를 달리하는 경우에 좌다, 우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지 건국의 정당성에 대한 근거를 달리하는 경우는 좌우라고 부를 수가 없는 겁니다.
작금의 현실에서는 좌우가 아니라 자유민주파(自由民主派)냐 전체주의파(全體主義派)냐 이렇게 분류가 될 수밖에 없는 거죠. 이 점을 국민들이 인식해야 하고, 국민들이 그렇게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이 자유민주 정당의 임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당(국민의힘)이 그런 면에서 너무 소홀합니다.”
“한국 언론, 러시아 언론과 뭐가 다른가?”
―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 이 점이 여간 큰 부담이 아니겠네요.
“만약 이것을 지금 제가 이야기한 식으로 파악하고 대책을 세운다고 하면 정권에만 미루고 있을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에요. 시민사회가 단결해서 움직여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시민사회가 근거할 수 있는, 다시 말해서 중간 집단이 존재할 수 있는 여건과 조건이 역사적으로 아주 취약합니다. 우리는 자치 경험이 없는 나라거든요. 어느 지역을 책임지고 돌보는 리더가 없어져 버렸어요. 식민지가 되면서 자치(自治)를 통해서 리더들이 양성될 수 있는 바탕이 다 없어진 겁니다. 그래서 그걸 만들어나가야 했는데 바로 전쟁이 나고, 아직까지도 중간 리더 집단의 형성이 잘 안 되고 있죠. 그래서 정부가 권력을 행사할 때 그것을 유기적으로 견제하고 토론할 수 없어요.
단 하나 남아 있던 것이 언론자유(言論自由)였습니다. 그래도 언론이 살아 있어서 여러 가지를 비판하고 정부를 견제해왔는데 문재인 정권 들어서 어떻게 됐습니까. 일부 언론이 어용화(御用化)되는 식으로 나가버리고…. 큰 틀에서 보면, 지금 러시아 언론하고 우리 언론하고 뭐가 다릅니까. 북한하고 뭐가 달라요? 게다가, 언론은 박근혜 탄핵, 소위 체제 탄핵을 할 때 무슨 일을 했습니까. 그 죄가 엄청납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리더가 선봉에 서고, 분명한 이념을 가지고 국민들을 납득시키는 정당을 만들고, 그에 따라서 시민사회가 강화돼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니죠.”
― 투표일 다음 날 아침 바이든 대통령이 바로 윤석열 당선자에게 전화를 해서, 윤 당선자의 첫 공식 일정이었던 현충원 참배가 한 시간 늦춰졌다는 기사도 나왔습니다만, 국제관계, 특히 대미 관계는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 아닙니까. 그런데 바다를 이용해서 발전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이승만 박사가 처음 바다를 거론합니다. 그다음에 박정희 대통령이 바다로 진출합니다. 이게 우리 역사에서 처음 있었던 일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지금은 바다를 전부 봉쇄하다시피 했거든요. 이렇게 가면 경제는 망하는 겁니다. 경제가 망하면 국가 발전을 위해 필요한 자본은 어디서 조달할 겁니까. 지금 세계적인 경제 구조를 보면 지구가 하나로 다 연결돼 있어요.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죠. 수출은 주로 해양을 통하는 건데, 문재인 정부는 해양에서 전부 다 비켜나는 식으로 정책을 취해 왔다 이 말이에요. 이게 보통 일입니까. 코로나19가 발생한 일도 우리로서는 해양 진출을 더욱더 잘할 수 있는 새로운 제2차적인 기회였는데, 이걸 다 차 버리고 말았어요. 그러니까 다시 해양으로 뚫고 나가야 하는 것이 윤 정부의 과제입니다.”
“一帶一路는 중국 제국주의”
민주당 의원들은 2019년 8월 2일 의원총회에서 일본의 경제침략 규탄대회를 열었다. 사진=조선DB
― 대일(對日) 관계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일본을 자꾸 욕해야 정치적 이익이 생긴다고 계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건 나쁜 감정만 부추기는 거거든요. 일본이 어디 100년 전의 일본입니까? 지금 일본을 욕하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자기들 행동이 일본 내에서 가장 극단적인 우파의 힘만 키워주는 것이라는 사실이죠.
대한민국의 국제정치적 위치가 어떤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해양 세력을 떠나 대륙 쪽으로 붙겠다고 하는데, 대륙에 뭐가 있습니까? 독재, 전횡…. 경제력이라는 것도 몇몇 룰링 엘리트(ruling elite)가 다 갖는 체제 아닙니까? 대륙 쪽으로 붙는다는 건 우리의 미래가 그렇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뜻입니까? 더 나아가서 우리가 독재와 전횡과 경제적 지배의 희생자가 되어도 괜찮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그동안 소원하게 지냈던 해양 세력과의 관계를 새롭게 복원해야 합니다. 지금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 사이에 일대 격전이 진행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대륙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계획에 대해서 찬성한다고 그랬잖아요. 일대일로 계획이 뭡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중국이 제국주의(帝國主義)를 하겠다, 그 말 아닙니까. 중국 말로는 ‘천하질서(天下秩序)’라고 하죠. ‘제국주의’의 다른 표현입니다. 동북공정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 내용이 다 들어 있어요.”
‘런던그라드’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우크라이나 문제가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에, 2월 초인가에 ‘전(全) 러시아 장교협회’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회장이 육군 대장인가 그래요. 여기에서 성명서를 내놓은 게 있습니다. 우리나라 언론에는 한 줄도 안 났죠.
그 성명서에 뭐라고 했느냐. ‘우크라이나, 크리미아반도 이런 곳에 들어가지 마라. 동유럽이 군사적으로 러시아에 위협이 된다고 한다면, 우리 러시아에서 그들이 모방하고 싶은 체제를 만들었으면 됐을 거 아니냐. 러시아 체제 자체가 미래의 모델로 작용할 수 있도록 나아갔다면 군사 작전할 필요가 없지 않았느냐. 그걸 못 한다고 한다면 푸틴은 물러나야 한다.’ 이런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얼마나 맞는 말입니까. 소련 제국에 포함돼 있던 동유럽 옛 위성 국가들이 그 체제에서 벗어나면서 전부 다 유럽 세력 쪽으로 넘어갔잖아요. ‘그런 세상에서는 더 이상 못 살겠다’는 집단적 의사 표시죠. 이제 다시는 이런 전제주의적인 제국주의의 체제에서 억압받고는 살지 않겠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NATO나 EU에 전부 다 들어가겠다고 난리가 난 거 아닙니까. 난리가 났는데,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곡창지대로 불리는 엄청나게 풍요한 지역이고 바로 러시아 코앞이잖아요.
러시아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모방하고 싶은 체제를 만들었다면, 다른 나라를 굳이 침공할 필요가 없어요. 같은 체제를 가지고 서로 평화적으로 나가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저쪽은 독재고 이쪽은 독재 못 하겠다고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저항이 엄청나지 않습니까.
얼마 전에 오래간만에 유엔총회가 열렸죠. 몇 나라만 빼놓고 세계 전체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 러시아를 비난했어요. 지금 ‘런던그라드’라는 말도 나옵니다. 푸틴 주변의 뭐랄까 통치 계층이라고 해야 하나 정권과 결탁한 소수가 엄청난 돈을 벌었잖아요. 영국에 들어가서 언론사도 사고 건물도 사고 투자도 하고 프로축구단도 사고, 돈잔치가 벌어졌거든요. 그래서 러시아 비자금이 다 런던으로 간다, 구 소련 시절에는 스탈린그라드, 레닌그라드가 정치 경제의 중심지였다면 지금은 ‘런던그라드’가 러시아의 핵심이다, 이런 농반진반의 별명이죠. 그래서 영국이 이번에 제일 강하게 나오는 겁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서 가장 정확하게 파고들어서 보도하는 게 BBC입니다.”
“중국 체제가 먼저 바뀌어야”
― 러시아가 핵을 쓸 가능성은 없습니까.
“핵이라고 하는 것은 여간해서는 쓰는 것이 아닙니다. 핵을 써서 점령을 해봤자 의미가 없어요. 사람 다 죽어버리고 땅은 전부 방사능에 오염되고…. 그렇게 되면 승리하고 패배하는 거예요.”
― 중국이 북한에서 군사 작전을 할 가능성은 없습니까.
“침공이야 안 하겠지만 다른 의미에서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중국이 지금 북한에 대해서, 그리고 한반도 전체를 두고 공정을 하고 있잖아요. 저는 만약에 북한 정권이 무너진다면, 중국이 평양-원산 선을 잘라서 그 이북에 군대를 파견할 가능성이 거의 100%라고 생각합니다.”
― 그럼 미국이 가만히 있을까요.
“중국이 한반도 일부를 사실상 점령하면, 당장 일본이 안보 위협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돈 케어(don’t care)가 되는 겁니다. 이건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실질적인 위험이에요. 그러면 개별 국가인 남북 양쪽이 체제를 하나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 일만 해도 엄청나게 큰 과제이지만 중국 체제가 먼저 바뀌지 않으면 남북 체제 통일은 실현 불가능한 일이죠. 중국 체제가 바뀐다? 이게 보통 일입니까? 시진핑(習近平) 독재가 지금 점점 강화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럼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전쟁을 피하고 어떻게 대륙의 체제를 바꿀 수 있느냐. 대한민국은 작은 나라지만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국제적 체제 강화의 최전선(最前線)에 설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끝이에요.
이번 선거는 아닌 게 아니라 대한민국이 존재하느냐 지상에서 사라지느냐 그 명운(命運)이 달렸던 선거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세력과 세력의 투쟁’
― 우크라이나, 북한, 대한민국…. 새삼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크라이나가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사태의 추이를 잘 관찰해야죠. 그런데 지금 현 정부가 대한민국의 국방 태세를 완전히 무력화시켜놓지 않았습니까.
보기에 따라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준(準)전체주의식으로 나가다가 이제 잠깐 브레이크가 걸린 거죠. 그런데 저쪽은 아직까지 수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회권력, 지방권력….
새 정부는 ‘세력 대 세력’이라는 큰 틀에서 상황을 인식하고 대처해야 합니다. 지금 한 개인을 가지고 따질 문제가 아니에요. 권력이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칩니까?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 ‘세력과 세력의 투쟁’을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갈 것이냐.
우선 대한민국 헌법에 의한 체제부터 제대로 위치를 찾아야 합니다. 지금은 헌법의 원칙이 많이 무너졌어요. 삼권분립(三權分立)만 해도 다 날아가버리지 않았나요. 이것부터 우선 제도적으로 정상화를 시켜놓고 그다음에 하나씩 하나씩 바로잡아야 하는데, 지금 상황이 타협과 협치를 하고, 계획을 짜고 이런 속도로 나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겁니다.”
― 간단한 문제가 아니네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로 조심해서 봐야죠. 언론의 역할도 막중합니다.”
“윤석열, 사소한 문제는 신경 쓰지 말아야”
― 대통령 당선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당선자께서도 평생 검찰에만 있다가 저쪽하고 정치적·이념적 갈등에 부딪히면서부터 상황의 심각성을 알기 시작한 것 같아요. 법률가들이 보통 현실을 잘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죠. 조직을 떠나 세상에 나와서 ‘세상이 이랬느냐’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제도적으로 공무원은, 검찰 공무원도 대통령 명에 따라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당선자도 검찰총장 시절까지 충실히 했죠. 충실히 했는데, 하다가 보니까 나중에 보니까 이게 아니다, 느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점을 깨닫고 방향을 잡고, 직접 싸우겠다고 나와주신 것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또 완전한 인간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사소한 문제에는 신경 쓰고 집착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립니다. 당선자는 우리가 좌파 혁명에 대해서 투쟁하는 최전선에 스스로 나선 겁니다. 본인이 향도(向導)로 섰다고 하는 것을 인식해주시기 바라고, 그 역할을 잘 수행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노학자의 목소리에는 결기가 가득했다. 백척간두(百尺竿頭)의 대한민국이 위기를 극복하고, 먼 미래에도 전 세계를 비추는 자유와 민주의 등대(燈臺)로 살아남아 길이 번영하기를 희망하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E&nNewsNumb=20220410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