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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교회 개방 의무에 대한 성경적 입장 / 존 맥아더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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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in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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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맥아더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 입장


A Biblical Case for the Church’s Duty to Remain Open

교회 개방 의무에 대한 성경적 입장


그리스도는 만물의 주님이시다. 그는 교회의 유일한 참 머리이시다(엡 1:22, 5:23, 골 1:18)이다. 그는 또한 왕 중의 왕이시다. 모든 지상의 권위에 위에 계신 통치권자이시다. (딤전 6:15; 계 17:14; 19:16).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는 항상 그러한 성경적 원칙들에 확고히 서 있다. 우리는 주님의 백성으로서 성경에 계시된 그분의 의지와 계명들에 복종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부가 우리의 주간 회중 예배나 다른 정기적인 단체 모임에 대해 부과한 유예 조치를 묵인할 수 없고 묵인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순응하는 것은 우리 주님의 명료한 명령에 불복종하는 것이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확고한 진술이 로마서 13장과 베드로전서 2장에 제시된 다스리는 권위들에 대해 복종해야 한다는 명령과 엄연히 모순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성경은 왕들, 위정자들, 고용주들, 그리고 그들의 대리인들을 포함한 모든 다스리는 권위에 대한 조심스럽고 양심적인 복종을 실제로 명령한다(베드로의 말씀에 의하면 "선하고 관용하는 자에게만이 아니라 까다로운 자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한다 [벧전2:18]). 정부 당국이 교회적인 권위를 주장하려 하거나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하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지 않는 한, 그들의 권위는 우리가 그들의 규정들에 동의하든 동의하지않든 복종해야 한다. 즉 로마서 13장과 베드로전서 2장은 여전히 개별 기독교인의 양심에 의무를 지우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 자신이 임명하신 권력으로서 우리의 시민적 권위들에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시민 정부가 국가를 통치하기 위한 신적 권위를 부여받는 반면, 위의 본문들(또는 다른 어떤 본문들도)은 시민 통치자들에게 교회에 대한 관할권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 사회 내에 가족, 국가 및 교회라는 세 가지 기관을 설립했다. 각의 기관은 권위가 미치는 영역이 있다. 그것은 반드시 존중되어야 할 관할 제한선이다. 한 아버지의 권위는 자기 가족에만 국한되어 있다. 교회 지도자들의 권위(그리스도의해 그들에게 위임된)는 교회의 일들에 국한되어 있다. 그리고 정부는 특히 국가나 공동체의 경계 내에서 시민 평화와 복지의 감독과 보호를 담당한다. 하나님은 교회의 교리, 실천 또는 정치에 대해서 시민 통치자들에게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 성경적 틀은 각 기관의 권위를 그것의 특정 관할권으로 제한한다. 교회는 개별 가정의 일에 간섭하고 부모의 권위를 무시할 권리가 없다. 부모들은 정부의 공무원들을 피해가면서 민사 문제를 다룰 권한이 없다. 이와 유사하게, 정부 관리들은 하나님이 주신 목사와 장로들의 권위를 훼손하거나 무시하는 방식으로 교회 일들에 간섭할 권리가 없다.


세 기관 중 어느 하나라도 자신의 관할범위를 넘어설 경우, 그런 지나친 과잉간섭을 억제하는 것이 다른 기관의 의무다. 그러므로 어떤 정부 공무원이 예배를 규제하라는 명령(노래 금지, 출석 제한, 집회 및 예배의 금지 등)을 내리면, 그는 시민 공무원으로서 하나님이 정한 권위의 합법적인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며, 하나님이 그의 나라, 곧 교회의 통치권자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명시적으로 부여하신 권위를 그 자신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통치는 그의 말씀을 가르치는 목회자와 장로들을 통해 지역 교회들에게 중재된다(마 16:18–19; 딤후 3:16–4:2)


따라서 캘리포니아 안에 있는 교회들에게 모든 모임을 무기한 제한하거나 중단하도록 요구하는 최근 정부의 명령에 대해 그레이스커뮤니티 교회의 목회자들과 장로들인 우리는 시민 지도자들에게 그들이 그들의 합법적인 관할권에 대해 월권한 것임을 정중히 알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심은 그들이 우리의 공동체 예배 위에 부과하기 원하는 제한들을 따르는 것을 금한다는 것을 알린다. 


달리 말하면, 예배를 명하거나, 수정하거나, 금지하거나 또는 요구하는 것은 결코 시민 정부의 특권이었던 적이 없다. 언제, 어떻게, 얼마나 자주 교회 예배들이 있어야 하는지 교회는 카이사르에게 지배 받지 않는다. 카이사르 자신이야 말로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다. 예수께서는 빌라도에게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요 19:11)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원칙을 단언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기 때문에, 교회적 일들은 카이사르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왕국에 속한 것이다. 예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라"(막 12:17)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은 그 두 왕국을 극명하게 구별하셨다. 우리 주님 자신은 항상 카이사르의 것을 카이사르에게 주셨지만, 오직 하나님에게 속한 것을 카이사르에게 결코 받치지 않았다.


목회자들과 장로들로서 우리는 교회의 머리로서 오직 그리스도에게 속한 그 어떤 특권과 권세도 세속적 권위들에게 넘길 수 없다. 목회자들과  장로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서 그분의 영적 권위를 행사할 의무와 권리를 부여받은 자들이다(벧전 5:1–4; 히 13:7, 17). 그리고 오직 성경만이 그들이 어떻게 또 누구를 섬길 것인가를 규정한다(고전 1:1–4). 그들은 교회의 예배나 교회에 대한 관리를 규제하려고 시도하는 시민 정부의 명령을 따를 의무가 없다. 실제로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가 위임한 권위를 시민 통치자에게 양도한 목회자들은 주님 앞에서 그들의 책임을 버린 것이며, 위법적으로 교회 위에 자신의 권위를 부과하려는 세속 공무원들 만큼이나 하나님이 정하신 권위의 영역들을 침해한 것이다. 우리 교회의 교리적인 선언문은 40년 이상 다음과 같은 단락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개인이나 단체의 어떤 계층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고 자치의 권리를 가지고 어떠한 외부의 권위나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지역 교회의 자율성을 가르친다(딛 1:5) 우리는 믿음의 소개와 전파를 위해 참된 교회들이 서로 협력하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각 지역 교회는 그들의 장로들과 성경의 해석과 적용을 통해 그 협력의 정도와 방법을 단독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장로들은 회원 자격, 정책, 훈련, 자선, 그리고 운영에 관한 다른 모든 문제들도 결정해야 한다 (행 15:19–31; 20:28; 고전 5:4–7, 13, 벧전 5:1–4)


요컨대 교회로서 우리는 주님이 명령하신 대로 우리의 주님을 섬기고 예배하기 위해 정부의 허락이 필요하지 않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소중한 신부이다(고후 11:2, 엡 5:23–27). 교회는 그분에게만 속했다. 교회는 그분의 의지에 따라 존재하며 그분의 권위 아래서 봉사한다. 그분은 교회의 순결함에 대한 어떤 공격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교회에 대한 자신의 머리됨에 대한 침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예수께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확립되었다(마 16:18).


그리스도의 고유한 권한은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 1:21-23)라는 사실 위에 있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의 세속 통치자들과 지사들에게 마땅히 의무로 가져야 하는 존경(롬 13:7)은 그러한 공무원들이 건전한 교리를 전복시키려고 시도하거나 , 성경적 도덕성을 훼손하려거나, 교회적 권위를 행사하려거나, 어떤 다른 방식으로든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대신하려할 때는 준수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적 명령은 명확하다. 그리스도는 카이사르 위에 계신 주님이시지, 그 반대는 아니다. 카이사르가 아닌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시다. 반대로 교회는 어떤 의미에서도 정부를 지배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들은 구분되는 왕국들이며, 그리스도는 둘 다 통치한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능이 나에게 주어졌다"(마 28:18)고 선언한 그리스도 자신의 권능보다 더 높은 권위는 교회에도 국가에도 없다.


미국헌법의 수정 조항 제1조가 "국회는 종교의 설립을 존중하거나 종교의 자유로운 행사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할 수 없다"는 여는 글 안에 이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헌법적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우리가 호소하고 있는 권리는 헌법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부여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 중 하나다. 하나님만이 인간의 정부를 임명하고 그 정부의 권위의 범위와 한계를 모두 확립하신다(롬 13:1–7). 그러므로 비록 수정헌법 자체가 기초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성경적 원칙에 기초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주장은 수정헌법 제1조에 의도적으로 근거한 것이 아니다. 참된 종교의 행사는 하나님의 형상(창 1:26–27; 행 4:18–20; 5:29; 참고 마 22:16-22)으로 창조된 남녀에게 주어진 신성한 의무다. 달리 말해, 예배의 자유는 국가가 부여한 특권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 맥락에서 추가적인 논점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는 항상 신실하시고 진실하시다(계 19:11). 인간 정부는 그 정도로 신뢰할만하지 않다. 성경에 이르기를 "온 세상은 악한 자안에 처한 것이며"(요일 5:19)고 하였다. 그것은 물론 사탄과 관련이 있다. 요한복음 12장 31절과 16장 11절은 그를 "이 세상의 통치자"라고 부르는데, 이는 그가 이 세계의 정치 체제(참고. 눅4:6, 엡2:2, 6:12) 를 통해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가 거짓말쟁이여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요 8:44) 역사는 정부 권력이 쉽게 그리고 자주 악한 목적으로 악용된다는 뼈아픈 기억으로 가득 차 있다. 정치인들은 통계를 조작하고 언론은 불편한 진실을 은폐하거나 위장할 수 있다. 그러므로 통찰력 있는 교회는 비록 주어진 이유가 공중 보건과 안전에 대한 우려일지라도 정부가 집회 중단을 명령한다면 수동적이거나 자동적으로 순응할 수 없다.


교회는 정의상 모임이다. 그것은 그리스어 ‘교회’, 즉 에클레시아-‘부름받은 자들의 모임'을 뜻하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다. 모이는 것이 없는 모임은 용어상으로 모순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함께 만나는 관행을 버리지 말라는 명령을 받는다(히 10:25). 그리고 어떤 지상 국가도 신자들이 모이는 것을 제한하거나, 한계를 정하거나, 금지할 권리가 없다. 우리는 기독교 회중 예배가 정부에 의해 불법으로 간주되는 나라들에 존재하는 지하 교회들을 항상 지지해 왔다.


공무원들이 교회 참석을 일정 인원으로 제한하면, 그들은 성도들이 교회로 모이는 것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제한을 두려고 시도하려는 것이다. 공무원들이 예배에서 찬양하는 것을 금지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에베소서 5장 19절과 골로새서 3장 16절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제한을 가하려고 하는 것이다. 공무원들이 거리를 두는 것을 명령할 때, 그들은 로마서 16:16, 고전 16:20, 고후 13:12, 살전 5:26에서 명령하는 신자들 사이의 친밀한 친교를 경험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제한을 두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그 모든 영역들에서 우리는 우리의 주님께 복종해야만 한다.


비록 미국에 있는 우리가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정부가 침입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기독교인들이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나 적대적인 통치자들을 다루어야 했던 것은 교회 역사상 결코 처음이 아니다. 사실 교회 역사를 통틀어 정부 권세들에 의한 교회 박해는 예외가 아니라 일반적인 것이었다. 성경에 이르기를 "진실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기를 원하는 자는 모두 박해를 받을 것이다"(딤후 3:12)라고 하였다. 역사적으로 두 주요 박해자는 항상 세속적인 정부와 거짓 종교였다. 기독교 순교자들의 대부분은 그러한 권위에 복종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죽었다. 이것은 결국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요 15:20) 그는 산상수훈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정부 정책이 성경적 원칙에서 멀어지고, 교회에 대한 법적, 정치적 압력이 심해질 때 우리는 주님이 이러한 압력들을 진정한 교회를 밝히기 위해 정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정부의 과잉진압에 굴복하면 교회가 무기한 폐쇄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가 이렇게 적대적인 분위기에서 어떻게 자신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 오직 한 가지 방법만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대담한 충성뿐이다!


정부가 교회에게 호의적인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도 기독교 지도자들은 종종 공격적인 국가 관리들을 밀어낼 필요가 있었다. 예를 들어 칼빈의 제네바에서 교회 관계자들은 때때로 예배, 교회 정치, 교회 규율의 측면들을 통치하려는 시의회의 시도를 막아야 했다. 영국 교회는 영국 정부와 의회가 항상 교회 문제에 간섭해 왔기 때문에 완전히 개혁된 적이 없다. 1662년 청교도들은 공통 기도서 사용, 성직자 제의 착용, 그리고 정부에 의해 규제된 예배의 다른 의식적인 측면들을 사용하는 것에 관한 정부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그들의 설교단에서 쫓겨났다. 영국 군주는 여전히 최고 통치자이자 성공회 교회의 명목상의 수장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해야겠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교회의 하나뿐인 진정한 머리이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모든 모임에서 그 극히 중대한 진리를 존중하려고 한다. 이 우월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정부 공무원들이 지금 우리 회중들에게 부과하기 원하는 침입적인 제한들을 받아들일 수 없고 굽히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반응을 악의 없이, 그리고 투쟁하거나 반항적인 마음에서가 아니라(디모데 2:1–8; 1 베드로 2:13–17)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의 그의 귀한 양떼의 목자들로서의 책무에 우리가 대답해야 한다는 냉정한 자각 가운데 제공한다.


정부 관리들에게 우리는 사도들과 함께 정중히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 4:19)고 말한다. 그리고 그 물음에 우리의 주저하지 않는 대답은 사도들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행 5:29)와 같다.


우리의 기도는 모든 신실한 교인들이 기독교인들이 수세기 동안 해왔던 것처럼 우리 주님에 순종하여 우리와 함께 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부록

그레이스 교회의 장로들은 최초의 정부 명령을 고려하고 독립적으로 동의한 것이지, 국가가 언제,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할지 교회에 말할 권리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니다. 분명히 말하면, 우리는 원래의 명령이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것처럼 정부의 권위가 교회 문제에 불법적으로 침입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바이러스의 진짜 심각성을 알 수도 없었고, 주님처럼 사람을 아끼기 때문에, 심각한 전염에 대한 공중보건을 지키는 것은 기독교인은 물론 시민정부의 정당한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는 자발적으로 우리 정부의 초기 권고를 따랐다. 물론 기독교인들이 질병이나 공중 보건에 대한 임박한 위협 앞에서 일시적으로 성도의 모임을 자제하는 것은 정당하다.


파괴적인 폐쇄조치가 시작되었을 때, 그것은 단기적인 미봉책으로, 병원들이 압도당하지 않도록 감염률을 늦추기를 원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확진자 곡선을 완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리고 끔찍한 죽음의 예측들도 있었다. 그런 요소들을 감안해서 우리 목회자들이 교회를 위해 내려졌던 가이드라인을 지켜보며 대책을 지지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영적 권위를 세속적인 정부에 양보하지 않았다. 우리는 처음부터 우리의 자발적인 준수는 규정된 목표를 넘어 질질 끌거나, 정치인들이 과도하게 교회 일에 개입하거나, 보건 공무원들이 교회의 사명을 훼손할 수 있는 규제를 추가하면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책임의 짐을 염두에 두고 모든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단지 넘치는 보살핌과 이성적으로 행동하고자 하는 열망(빌 4:5)에서 보건 공무원들의 염려를 지원하고 교회 성도들 사이에 같은 고민을 수용하는 초기의 기회를 가졌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20주 이상 지난 지금 변함없이 계속되는 제한들을 받고 있다. 이는 원래의 죽음과 관련된 예측이 틀렸고 바이러스는 원래 두려워했던 것만큼 위험스럽게 가까이 있지는 않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략 40%의 해가 지나갔고, 우리 교회는 본질적으로 정상적인 방법으로 모일 수 없었다. 목회자들이 양떼를 목양하는 능력은 심각하게 삭감되었다. 교회의 연합과 영향력이 위협받고 있다. 신자들이 서로 섬기고 사역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 


그리고 긴급한 친교의 필요성와 격려가 아니고는 해소되기 어려운 문제를 당하고, 두려하고, 괴로워하며, 병약한 기독교인들의 고통은 합리적으로 정당하게 여겨지거나 필요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그 어떤 것 이상으로 확대되었다.


2021년으로 예정됐던 주요 공공 행사들은 이미 취소되고 있어 이는 내년 이후를 넘어서까지 공무원들이 제약들을 유지할 준비를 하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그것은 교회가 우리 주님의 분명한 명령과 정부 공무원들의 명령 사이에서 선택하도록 강제한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를 따르는 자들로 우리는 기꺼이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종하기를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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